[손기웅의 통일토크] "시진핑 제치고 김정은 후견인 과시한 푸틴, 시 주석의 선택은..." (뉴스퀘스트,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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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1,692회 작성일 24-06-24 21:54본문
<사진>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금수산영빈관 정원구역에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친교를 다졌다고 20일 보도했다. 푸틴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선물한 아우루스 차를 두 사람이 서로 번갈아 몰며 영빈관 구내를 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연합뉴스/조선중앙통신]
[손기웅의 통일토크] "시진핑 제치고 김정은 후견인 과시한 푸틴, 시 주석의 선택은..." (뉴스퀘스트, 2024.06.24)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013
6월 19일 북·러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이고 세계정세에도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합의한 내용에 더해 양국이 보여준 외형도 변화와 대결에의 의지를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을 통해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정치·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식량, 에너지안전, 정보통신기술분야에서의 안전, 기후변화, 보건, 공급망, 무역경제, 투자, 우주, 생물, 평화적 원자력, 인공지능, 정보기술 등을 포함하는 과학기술분야, 농업, 교육, 보건, 체육, 문화, 관광, 환경보호, 자연재해방지 및 후과제거 등”에서 교류와 협조를 발전시키고 공동연구 등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는 미국이 “본질에 있어서 ‘2중 기준’에 기초한 세계적인 신식민주의독재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닌 이른바 ‘규정에 기초한 질서’를 세계에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정의와 자주권에 대한 호상존중, 서로의 리익에 대한 고려를 기초로 하는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수립하는데 저애를 주려는 ‘서방 집단’의 욕구를 견결히 반대”하고,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에 뜻을 함께 했다.
문서에 나타난 글이나 나온 말 외에 김정은·푸틴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대외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외형도 지역을 넘어서는 파고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주요 장면에 단상을 더해 살펴본다.
먼저 이번에 푸틴은 자신의 건재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3년째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 6월 수하였던 바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일으킨 쿠데타의 여파에도 금년 초 5연임을 확정지은 그는 평양과 하노이란 장거리 순방을 사실상 이틀 만에 소화했다.
그간 많은 억측을 낳았던 건강이상설은 그냥 ‘썰’에 불과했다. 김정은과 만나고 헤어질 때 비행기 계단을 가볍게 오르내리는 그의 행동에서부터, 조선중앙TV가 보여주는 그의 전 일정을 통해 나이에 비해 훨씬 젊은 에너지가 전해졌다. 리무진으로 이동할 때마다 양복 상의를 벗고 뒷좌석에 올랐다.
다음으로 김정은과 푸틴이 단순한 국가 정상 간의 관계를 넘어 생각 이상으로 친분을 쌓은 것으로 보였다. 시진핑과 김정은이 보여준 대형(大兄)과 막내 동생 같은 거리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절박하게 필요로 하고 이용하는 상황적 배경이 있다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격의가 없었다. 김정은이 친구를 대하듯 푸틴을 이끌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번 회담에 정성을 기울였다. 모든 것이 통제 속에 움직이는 북한 체제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푸틴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에 환영의 선전선동을 입체적으로 조직해 푸틴이 흐뭇하도록 세심히 연출했다.
평양의 “고층, 초고층건물들에는 거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와 로씨야련방 국기가 드리워져 있는 속에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치 뿌찐동지의 대형초상화”가 걸렸고, “곳곳에 ‘로씨야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동지를 환영합니다’, ‘환영 뿌찐’, ‘불패의 조로친선단결 만세!’, ‘조로친선은 영원하리!’ 등의 구호와 표어들이 반영된 선전화, 환영립간판들”이 세워졌다.
환영행사가 열린 김일성광장 상공에는 “공군비행대가 로씨야련방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연무”를 뿌렸고, 수십 리 연도는 “아름다운 꽃들로 특색 있는 화단들과 무리기발, 오색기 등으로 단장”했고, 각계각층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열렬히 환영하게 했다. 푸틴이 머문 금수산영빈관 앞 정원에는 꽃으로 거대한 러시아 국기를 조성하고, 밤에는 불야성의 평양 스카이라인을 보여주었다.
없는 살림에 많은 비용을 들였지만, 김정은은 세계 제2의 군사대국이 자신 편에 있음을 대내외에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푸틴은 여기에 화답했다.
푸틴이 김정은과 작별하고 베트남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오른 후, 문이 닫히고 떠나는 비행기를 김정은이 선채 손을 흔드는 통상적 모습이 아니었다. 좌석에 앉은 푸틴은 유리창을 통해 김정은과 군중들을 보며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나름 최선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 환대에 화답하는 모습을 연출해 김정은의 체면을 세워줌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진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하다.
푸틴의 이번 북한과 베트남 방문 의도는 한 마디로 “나야 나, 내가 푸틴이야, 시진핑이 아니라 나란 말이야, 내가 세계 지도자야”로 정리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푸틴은 김정은과의 만남에서 김정은으로부터 “앞으로 지금 시점에서 조러관계를 우리 대외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하고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은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는 발언을 이끌었다. 중국을 견제한 것이다.
이번에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도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북한은 ‘위대한’ ‘불패의 동맹관계’가 “오늘 이 자리에서 비로소 력사의 닻을 올리며 장엄한 출항을 알리였다”고 이번 조약을 선전하였고, 김정은과 북한의 모든 선전선동매체가 푸틴과 러시아 찬사로 도배하게 만들었다.
베트남 역시 중국이 공들이는 동남아의 교두보다. 2018년 트럼프와의 하노이 회담을 위해 김정은은 시진핑을 만나 교시를 청취하고, 시진핑의 배려 아래 중국을 철도로 횡단하며, 중국의 보호를 받으며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 귀국도 중국을 관통해 돌아가 중국은 북한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북한은 중국이 자신의 든든한 후견인임을 과시했다.
푸틴은 평양에서 김정은의 절절한 환대 속에 러·북 관계의 새 출발을 알린 후 바로 베트남으로 이동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시진핑이 아니라 자신이 북한과 베트남의 후견인임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시진핑의 상징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동쪽 끝이자 동쪽 출발점인 북한과 베트남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보이면서 일대일로를 흔드는 것이다. 시진핑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푸틴식 남방정책의 일환이다. 일대일로의 서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지중해 동쪽끝 지역에서 하마스, 시리아 등에 대한 군사지원은 이란 지원과 더불어 러시아가 남쪽으로 일대일로의 맥을 딱딱 끊는 형세다.
더구나 시진핑의 세력권 팽창 정책이 ‘비지니스 접근’이라면, 푸틴은 무력충돌도 불사한다. 시진핑이 경제적 지원·협력을 매개로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것이라면,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리아·하마스·이란·북한 지원과 도발이 보여주듯이 전쟁도 서슴지 않는다. 변화를 원하는 세력, 민족, 국가에게는 비지니스적 시진핑이 아니라 화끈하고 확실한 푸틴이 더욱 가슴에 닿을 것이다.
푸틴이 시진핑을 압도하려는 ‘나야 나 행태’에 선봉을 자처한 것이 김정은이다. 상대하기에 버거운 시진핑 흔들기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 김정은이다.
러시아가 제1의 최중대시 우방국이라 말했던 김정은은 이번에 행동으로 시각적으로 확실히 보여주었다. 푸틴이 그에게 선물한 방탄리무진 아우루스에 차번호 ‘7.27.1953’을 달았다.
북한식으로 하면 ‘1953.7.27.’이 되어야 하고, 연도를 뒤에 쓰는 서양식으로 해도 ‘27.7.1953’이 되어야 함에도 굳이 잘 쓰지 않은 ‘7.27.1953’으로 붙였다. ‘7.27’, 즉 ‘칠이칠’이 6.25전쟁을 이겼다는 ‘전승절’의 북한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승리의 상징이다.
푸틴이 선물한 차에 ‘칠이칠’을 단 것에 더해 김정은은 푸틴이 이 차를 몰게 하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6.25전쟁 승리는 러시아의 지원에 의한 것이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 덕택에 전쟁을 이겼다고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6.25전쟁 74주년을 바로 앞두고.
또 자신이 운전하고 푸틴을 조수석에 앉혔다. 향후 승리를 푸틴과 함께하겠다는 표현이다. 김정은이 아무 계산, 의도 없이 충동적으로 이런 행태를 보였을 리 없다.
김일성이 패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대규모로 참전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수십만의 인명 피해를 입은 중국, 시진핑이 이 장면을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관계라 자부하고 주장했던 중·북 70년이 한순간에 무색해졌다.
중국의, 시진핑의 반격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중국을 오가며, 중국이 희망하는 한반도 및 동북아 그림을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에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한 이후에는 중국이 바라는 북한이 절대 아닐 것이라며 중국의 역할을 설득했던 필자의 주장이 현실이 되었다.
북한이 미국과 ‘핵 폐기’가 아니라 ‘핵 군축’의 빅딜을 하고, 북한이 미국의 중국 견제 최전선이 되는 그림에 앞서, 북한이 러시아와 먼저 빅딜을 하고 북·러가 중국을 압박하는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푸틴·김정은의 압박을 희석하기 위해 김정은에 더 다가설 것인지,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중·한 관계를 정립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기다.
김정은이 푸틴과 어떤 행태를 보여도 북한 주민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시진핑 중국이다. 경제를 지탱해주는 필수물자와 생필품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북한이다. 무역의 대중국 의존도는 95% 이상이다.
포악한 독재자이자 도살자인 푸틴·김정은과 어깨를 나란히 함께하며 시진핑이, 중국이 세계지도자와 세계지도국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손기웅의 통일토크] "시진핑 제치고 김정은 후견인 과시한 푸틴, 시 주석의 선택은..." (뉴스퀘스트, 2024.06.24)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26013
6월 19일 북·러 정상회담은 한반도와 동북아는 물론이고 세계정세에도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합의한 내용에 더해 양국이 보여준 외형도 변화와 대결에의 의지를 확실히 보였기 때문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체결을 통해 “쌍방 중 어느 일방이 무력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지체 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정치·군사 분야뿐만 아니라 “식량, 에너지안전, 정보통신기술분야에서의 안전, 기후변화, 보건, 공급망, 무역경제, 투자, 우주, 생물, 평화적 원자력, 인공지능, 정보기술 등을 포함하는 과학기술분야, 농업, 교육, 보건, 체육, 문화, 관광, 환경보호, 자연재해방지 및 후과제거 등”에서 교류와 협조를 발전시키고 공동연구 등 상호 협력하기로 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는 미국이 “본질에 있어서 ‘2중 기준’에 기초한 세계적인 신식민주의독재 외에는 그 무엇도 아닌 이른바 ‘규정에 기초한 질서’를 세계에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정의와 자주권에 대한 호상존중, 서로의 리익에 대한 고려를 기초로 하는 다극화된 세계질서를 수립하는데 저애를 주려는 ‘서방 집단’의 욕구를 견결히 반대”하고, “서방의 통제를 받지 않는 무역 및 호상결제체계를 발전시키고 일방적인 비합법적 제한조치들을 공동으로 반대해 나갈 것”에 뜻을 함께 했다.
문서에 나타난 글이나 나온 말 외에 김정은·푸틴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대외적으로 보여주고자 한 외형도 지역을 넘어서는 파고를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주요 장면에 단상을 더해 살펴본다.
먼저 이번에 푸틴은 자신의 건재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3년째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지난해 6월 수하였던 바그너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일으킨 쿠데타의 여파에도 금년 초 5연임을 확정지은 그는 평양과 하노이란 장거리 순방을 사실상 이틀 만에 소화했다.
그간 많은 억측을 낳았던 건강이상설은 그냥 ‘썰’에 불과했다. 김정은과 만나고 헤어질 때 비행기 계단을 가볍게 오르내리는 그의 행동에서부터, 조선중앙TV가 보여주는 그의 전 일정을 통해 나이에 비해 훨씬 젊은 에너지가 전해졌다. 리무진으로 이동할 때마다 양복 상의를 벗고 뒷좌석에 올랐다.
다음으로 김정은과 푸틴이 단순한 국가 정상 간의 관계를 넘어 생각 이상으로 친분을 쌓은 것으로 보였다. 시진핑과 김정은이 보여준 대형(大兄)과 막내 동생 같은 거리감이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절박하게 필요로 하고 이용하는 상황적 배경이 있다하더라도 두 사람 사이에는 격의가 없었다. 김정은이 친구를 대하듯 푸틴을 이끌기도 했다.
김정은은 이번 회담에 정성을 기울였다. 모든 것이 통제 속에 움직이는 북한 체제 특성을 최대한 활용해 푸틴이 움직이는 모든 동선에 환영의 선전선동을 입체적으로 조직해 푸틴이 흐뭇하도록 세심히 연출했다.
평양의 “고층, 초고층건물들에는 거폭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와 로씨야련방 국기가 드리워져 있는 속에 울라지미르 울라지미로비치 뿌찐동지의 대형초상화”가 걸렸고, “곳곳에 ‘로씨야련방 대통령 울라지미르 뿌찐동지를 환영합니다’, ‘환영 뿌찐’, ‘불패의 조로친선단결 만세!’, ‘조로친선은 영원하리!’ 등의 구호와 표어들이 반영된 선전화, 환영립간판들”이 세워졌다.
환영행사가 열린 김일성광장 상공에는 “공군비행대가 로씨야련방 국기를 상징하는 삼색연무”를 뿌렸고, 수십 리 연도는 “아름다운 꽃들로 특색 있는 화단들과 무리기발, 오색기 등으로 단장”했고, 각계각층 군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어 열렬히 환영하게 했다. 푸틴이 머문 금수산영빈관 앞 정원에는 꽃으로 거대한 러시아 국기를 조성하고, 밤에는 불야성의 평양 스카이라인을 보여주었다.
없는 살림에 많은 비용을 들였지만, 김정은은 세계 제2의 군사대국이 자신 편에 있음을 대내외에 확실히 보여주고자 했다. 푸틴은 여기에 화답했다.
푸틴이 김정은과 작별하고 베트남으로 향하는 전용기에 오른 후, 문이 닫히고 떠나는 비행기를 김정은이 선채 손을 흔드는 통상적 모습이 아니었다. 좌석에 앉은 푸틴은 유리창을 통해 김정은과 군중들을 보며 두 손을 맞잡고 흔들어, 나름 최선을 다해 정성을 기울여 환대에 화답하는 모습을 연출해 김정은의 체면을 세워줌은 물론이고 북한 주민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시진핑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만은 분명하다.
푸틴의 이번 북한과 베트남 방문 의도는 한 마디로 “나야 나, 내가 푸틴이야, 시진핑이 아니라 나란 말이야, 내가 세계 지도자야”로 정리될 수 있다.
지난해 9월 푸틴은 김정은과의 만남에서 김정은으로부터 “앞으로 지금 시점에서 조러관계를 우리 대외정책에서 제1순으로 제일 최중대시하고 발전시켜나가려는 것은 우리 정부의 확고한 입장”이라는 발언을 이끌었다. 중국을 견제한 것이다.
이번에는 북한이 중국의 영향력 아래에 있다는 도식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렸다. 북한은 ‘위대한’ ‘불패의 동맹관계’가 “오늘 이 자리에서 비로소 력사의 닻을 올리며 장엄한 출항을 알리였다”고 이번 조약을 선전하였고, 김정은과 북한의 모든 선전선동매체가 푸틴과 러시아 찬사로 도배하게 만들었다.
베트남 역시 중국이 공들이는 동남아의 교두보다. 2018년 트럼프와의 하노이 회담을 위해 김정은은 시진핑을 만나 교시를 청취하고, 시진핑의 배려 아래 중국을 철도로 횡단하며, 중국의 보호를 받으며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했다. 귀국도 중국을 관통해 돌아가 중국은 북한이 자신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북한은 중국이 자신의 든든한 후견인임을 과시했다.
푸틴은 평양에서 김정은의 절절한 환대 속에 러·북 관계의 새 출발을 알린 후 바로 베트남으로 이동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가, 시진핑이 아니라 자신이 북한과 베트남의 후견인임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시진핑의 상징 ‘일대일로(一帶一路)’의 동쪽 끝이자 동쪽 출발점인 북한과 베트남을 자신의 영향권으로 보이면서 일대일로를 흔드는 것이다. 시진핑의 일대일로에 맞서는 푸틴식 남방정책의 일환이다. 일대일로의 서쪽 끝이라 할 수 있는 지중해 동쪽끝 지역에서 하마스, 시리아 등에 대한 군사지원은 이란 지원과 더불어 러시아가 남쪽으로 일대일로의 맥을 딱딱 끊는 형세다.
더구나 시진핑의 세력권 팽창 정책이 ‘비지니스 접근’이라면, 푸틴은 무력충돌도 불사한다. 시진핑이 경제적 지원·협력을 매개로 정치·군사적 영향력을 증대하려는 것이라면, 푸틴은 우크라이나 전쟁과 시리아·하마스·이란·북한 지원과 도발이 보여주듯이 전쟁도 서슴지 않는다. 변화를 원하는 세력, 민족, 국가에게는 비지니스적 시진핑이 아니라 화끈하고 확실한 푸틴이 더욱 가슴에 닿을 것이다.
푸틴이 시진핑을 압도하려는 ‘나야 나 행태’에 선봉을 자처한 것이 김정은이다. 상대하기에 버거운 시진핑 흔들기에 자신감을 불어넣은 것이 김정은이다.
러시아가 제1의 최중대시 우방국이라 말했던 김정은은 이번에 행동으로 시각적으로 확실히 보여주었다. 푸틴이 그에게 선물한 방탄리무진 아우루스에 차번호 ‘7.27.1953’을 달았다.
북한식으로 하면 ‘1953.7.27.’이 되어야 하고, 연도를 뒤에 쓰는 서양식으로 해도 ‘27.7.1953’이 되어야 함에도 굳이 잘 쓰지 않은 ‘7.27.1953’으로 붙였다. ‘7.27’, 즉 ‘칠이칠’이 6.25전쟁을 이겼다는 ‘전승절’의 북한식 표현이기 때문이다. 승리의 상징이다.
푸틴이 선물한 차에 ‘칠이칠’을 단 것에 더해 김정은은 푸틴이 이 차를 몰게 하고 자신은 조수석에 앉았다. 6.25전쟁 승리는 러시아의 지원에 의한 것이다, 중국이 아니라 러시아 덕택에 전쟁을 이겼다고 전 세계에 알린 것이다, 6.25전쟁 74주년을 바로 앞두고.
또 자신이 운전하고 푸틴을 조수석에 앉혔다. 향후 승리를 푸틴과 함께하겠다는 표현이다. 김정은이 아무 계산, 의도 없이 충동적으로 이런 행태를 보였을 리 없다.
김일성이 패전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대규모로 참전해 전세를 역전시키고 수십만의 인명 피해를 입은 중국, 시진핑이 이 장면을 보고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혈맹관계라 자부하고 주장했던 중·북 70년이 한순간에 무색해졌다.
중국의, 시진핑의 반격이 어떻게 나타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중국을 오가며, 중국이 희망하는 한반도 및 동북아 그림을 위해서는 북한 핵문제에 중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 북한이 핵 무력을 완성한 이후에는 중국이 바라는 북한이 절대 아닐 것이라며 중국의 역할을 설득했던 필자의 주장이 현실이 되었다.
북한이 미국과 ‘핵 폐기’가 아니라 ‘핵 군축’의 빅딜을 하고, 북한이 미국의 중국 견제 최전선이 되는 그림에 앞서, 북한이 러시아와 먼저 빅딜을 하고 북·러가 중국을 압박하는 공동 전선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시진핑이 푸틴·김정은의 압박을 희석하기 위해 김정은에 더 다가설 것인지, 김정은이 원하는 것을 줄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한반도, 새로운 중·한 관계를 정립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시기다.
김정은이 푸틴과 어떤 행태를 보여도 북한 주민의 생명줄을 쥐고 있는 것은 여전히 시진핑 중국이다. 경제를 지탱해주는 필수물자와 생필품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하고 있는 북한이다. 무역의 대중국 의존도는 95% 이상이다.
포악한 독재자이자 도살자인 푸틴·김정은과 어깨를 나란히 함께하며 시진핑이, 중국이 세계지도자와 세계지도국으로 인정받을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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