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웅의 통일문] "열려라 우리나라. 아름다운 항구도시 독일 뤼벡의 작은 마을에 분단선이 그어졌다" (최보…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3,171회 작성일 21-03-31 15:39본문
[손기웅의 통일문] "열려라 우리나라. 아름다운 항구도시 독일 뤼벡의 작은 마을에 분단선이 그어졌다" (최보식의 언론, 2021.03.31)
http://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517
“열려라 우리나라”
1945년 전쟁에 패하면서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서쪽은 미국, 영국, 프랑스 서방연합국이, 동쪽은 소련이 점령했다. ‘한자동맹의 여왕’이라 불리며 한때 북유럽의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아름다운 항구도시 뤼벡의 작은 마을 쉬루툽(Schlutup)에도 느닷없는 비극이 찾아왔다. 동쪽 마을 어귀 한 집의 본채와 별채 사이에 분단선이 그어졌다.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그 분단이 44년이나 지속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1948~49년에 베를린 봉쇄사태가 일어나고, 저 멀리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와중에 전 유럽이 동서방의 군사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 편입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제서야 분단을, 자신들의 생이 다할 때까지도 분단이 열리지 않을 것을 절감하였다.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1956년 염원비를 세웠다. 전쟁을 일으킨 죄에 대한 벌로 분단이 되었기에 ‘통일’이란 말을 하거나 쓸 수 없었던 상황에서 주민들은 통일 염원을 이렇게 담았다. 비석에 “SLUT UP getrennt”를 새기고, 그 밑에 철조망을 그리고 “1945 - ”를 넣었다.
마을 이름 쉬루툽과 비슷하게 ‘쉬루트 업’으로 발음되는 ‘SLUT UP’은 옛 독일어로 ‘열려라’(schließ auf)의 의미다. “열려라 분단(getrennt)” 아래 철조망을 새겨 1945년 이래 철조망으로 분단된 조국이 언젠가는 열릴 것을 소망하였다. “1945 - ”으로 뒷부분을 공란으로 비워둔 것은 다시 하나로 되는 그 해의 숫자를 넣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2월 23일에도 이곳의 벽도 열렸다. 이듬해에는 꿈과 같은 통일이 이루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벅찬 감정을 다독이며 비석에 ‘1989’를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이제는 기념비가 된 이 염원비의 바로 곁에는 분단 시기의 ‘동서독 접경통과소’가 ‘접경박물관 겸 기록보존소’로 탈바꿈하여 분단의 상처와 통일의 환희를 증언하고 있다.
1,393㎞에 달하는 동서독 접경선 전역에 동독은 콘크리트/철조망 1차 장벽, 자동발사장치, 콘크리트 차량방벽, 발자국 탐지지대, 2차 전기 철조망, 콘크리트 감시탑과 벙커, 지뢰와 군견 등으로 철저히 통제했다. 서독 쪽에는 “정지. 여기가 접경지역”이란 표지판이 전부였다.
분단의 아픔이 깊어지자 서독은 통일의 염원을 간절히 담은 또 다른 표지판을 곳곳에 세웠다. “건너편도 독일이다”(Auch drüben ist Deutschland), “건너편도 조국이다”(Auch drüben ist Vaterland). 이 글귀에 저 너머 지척에 있는 부모, 친척들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이들의 한을 담았다.
“열려라 우리나라” 사업을 제안한다. 오는 8월 15일에 통일염원비 “열려라”와 통일염원표지판 “우리나라”를 세우기다. DMZ 남방한계선에 세울 염원비의 전면에는 “열려라 분단 철조망 1945 - ”를, 뒷면에는 분단 햇수를 새긴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매년 8월 15일 한 획을 더 새기면서, 분단의 아픔을 통일 염원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통일이 되는 그 날 1945 뒤에 통일해의 숫자를 새겨 넣고, 분단과 통일을 추념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통일염원표지판을 세운다. “건너편도 우리나라다. Over there is Korea, too”를 담은 표지판을 DMZ남방한계선 곳곳에 세우고, 한민족 한조국이란 ‘진실’을 잊지 않게,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더 넓고 깊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가 실현될 수 있음을 깨치게 한다.
“열려라 우리나라”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남북 모든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그날을 남북 주민에,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그날을 위해 우리 마음을 다지고, 최소한 8월 15일 하루만이라도 행동하게 한다. 분단이 일상화되고, 일상 속에 관심 없는 남의 얘기가 되어가는 통일을 우리의 가슴과 머리로 다시 활짝 받아들이는 변화가 “열려라 우리나라”다.
북한이 분탕질을 또 하고 대북 제재가 다시 입에 오른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무력 도발에 대응하는 대북 국제제재는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전제하는 바탕위에 이루어지는 국제정치행위다. 그 목적에 통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은 우리 몫이다. 갈등과 대립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통일의지를 지속하고 더욱 담금질해야 한다. 그것이 핵문제 해결의 근본 동력이기도 하다. 2021년 8월 15일, 슬프지만 희망과 의지를 다지려는 “열려라 우리나라”를 함께 시작해보자.
http://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517
“열려라 우리나라”
1945년 전쟁에 패하면서 독일은 동서로 분단되었다. 서쪽은 미국, 영국, 프랑스 서방연합국이, 동쪽은 소련이 점령했다. ‘한자동맹의 여왕’이라 불리며 한때 북유럽의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아름다운 항구도시 뤼벡의 작은 마을 쉬루툽(Schlutup)에도 느닷없는 비극이 찾아왔다. 동쪽 마을 어귀 한 집의 본채와 별채 사이에 분단선이 그어졌다.
마을 사람 어느 누구도 그 분단이 44년이나 지속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1948~49년에 베를린 봉쇄사태가 일어나고, 저 멀리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는 와중에 전 유럽이 동서방의 군사동맹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와 ‘바르샤바조약기구’(WTO)에 편입되어 첨예하게 대립하는 그제서야 분단을, 자신들의 생이 다할 때까지도 분단이 열리지 않을 것을 절감하였다.
넋 놓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우리가 뭐라도 해야 한다는 마을 주민들이 뜻을 모아 1956년 염원비를 세웠다. 전쟁을 일으킨 죄에 대한 벌로 분단이 되었기에 ‘통일’이란 말을 하거나 쓸 수 없었던 상황에서 주민들은 통일 염원을 이렇게 담았다. 비석에 “SLUT UP getrennt”를 새기고, 그 밑에 철조망을 그리고 “1945 - ”를 넣었다.
마을 이름 쉬루툽과 비슷하게 ‘쉬루트 업’으로 발음되는 ‘SLUT UP’은 옛 독일어로 ‘열려라’(schließ auf)의 의미다. “열려라 분단(getrennt)” 아래 철조망을 새겨 1945년 이래 철조망으로 분단된 조국이 언젠가는 열릴 것을 소망하였다. “1945 - ”으로 뒷부분을 공란으로 비워둔 것은 다시 하나로 되는 그 해의 숫자를 넣기 위해서였다.
마침내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12월 23일에도 이곳의 벽도 열렸다. 이듬해에는 꿈과 같은 통일이 이루어졌다. 마을 주민들은 벅찬 감정을 다독이며 비석에 ‘1989’를 새겨 넣을 수 있었다. 이제는 기념비가 된 이 염원비의 바로 곁에는 분단 시기의 ‘동서독 접경통과소’가 ‘접경박물관 겸 기록보존소’로 탈바꿈하여 분단의 상처와 통일의 환희를 증언하고 있다.
1,393㎞에 달하는 동서독 접경선 전역에 동독은 콘크리트/철조망 1차 장벽, 자동발사장치, 콘크리트 차량방벽, 발자국 탐지지대, 2차 전기 철조망, 콘크리트 감시탑과 벙커, 지뢰와 군견 등으로 철저히 통제했다. 서독 쪽에는 “정지. 여기가 접경지역”이란 표지판이 전부였다.
분단의 아픔이 깊어지자 서독은 통일의 염원을 간절히 담은 또 다른 표지판을 곳곳에 세웠다. “건너편도 독일이다”(Auch drüben ist Deutschland), “건너편도 조국이다”(Auch drüben ist Vaterland). 이 글귀에 저 너머 지척에 있는 부모, 친척들을 보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이들의 한을 담았다.
“열려라 우리나라” 사업을 제안한다. 오는 8월 15일에 통일염원비 “열려라”와 통일염원표지판 “우리나라”를 세우기다. DMZ 남방한계선에 세울 염원비의 전면에는 “열려라 분단 철조망 1945 - ”를, 뒷면에는 분단 햇수를 새긴다.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매년 8월 15일 한 획을 더 새기면서, 분단의 아픔을 통일 염원으로 승화시키려 한다. 그리고 마침내 통일이 되는 그 날 1945 뒤에 통일해의 숫자를 새겨 넣고, 분단과 통일을 추념하고 기념하는 것이다.
동시에 “우리나라” 통일염원표지판을 세운다. “건너편도 우리나라다. Over there is Korea, too”를 담은 표지판을 DMZ남방한계선 곳곳에 세우고, 한민족 한조국이란 ‘진실’을 잊지 않게, 통일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더 넓고 깊은 자유와 민주주의, 인권과 복지가 실현될 수 있음을 깨치게 한다.
“열려라 우리나라”를 통해 인간다운 삶을 남북 모든 주민들이 누릴 수 있는 그날을 남북 주민에, 국제사회에 호소한다. 그날을 위해 우리 마음을 다지고, 최소한 8월 15일 하루만이라도 행동하게 한다. 분단이 일상화되고, 일상 속에 관심 없는 남의 얘기가 되어가는 통일을 우리의 가슴과 머리로 다시 활짝 받아들이는 변화가 “열려라 우리나라”다.
북한이 분탕질을 또 하고 대북 제재가 다시 입에 오른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무력 도발에 대응하는 대북 국제제재는 한반도에 두 개의 국가를 전제하는 바탕위에 이루어지는 국제정치행위다. 그 목적에 통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통일은 우리 몫이다. 갈등과 대립의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통일의지를 지속하고 더욱 담금질해야 한다. 그것이 핵문제 해결의 근본 동력이기도 하다. 2021년 8월 15일, 슬프지만 희망과 의지를 다지려는 “열려라 우리나라”를 함께 시작해보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