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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문] "우리 공화국에서는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최보식의 언론, 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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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709회 작성일 21-11-0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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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문] "우리 공화국에서는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최보식의 언론, 2021.09.01)

https://www.bosik.kr/news/articleView.html?idxno=2438

1989년 봄 학기. “이제 내게 편하게 Dutzen하게.” 세 시간 구두시험을 마치자 독일교수님이 ‘Doktorvater(박사 지도교수)’가 되겠다며 온화한 얼굴로 건네준 말이었다. 평화 연구의 대가이자 아버지와 같은 연세인 당신을 ‘귀하(Sie)’가 아닌 ‘너(Du)’로 부르며 말 트자는 것이다. 교수와 박사제자 간 당시의 관행이었다.

십여 명의 제자가 매주 한 번 모이는 세미나실에는 긴 원탁이 있었고, 출입문은 앞쪽 하나였다. 첫 시간, 교수님이 들어오시자 재빨리 발딱 일어서서 “Guten Tag, Herr Professor”로 인사드렸다. 도저히 비칭(卑稱)을 할 수 없어 존댓말을 계속했다. 4주 째, 수업 전 옆 독일 학생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너는 그렇게 아부하고 싶나, 왜 다른 이들은 그냥 앉아 있는데 너만 일어나 인사하나, 수업 중에 너만 존칭을 하나,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말 듣지 못했나, 계속 그러면 너를 친구로 대하지 않겠다.”

고민에 빠졌다, 어떻게 할 것인가. 5주 째, 몸을 반쯤 일으켜 인사드리고, 존칭은 계속했다. 1년 반이 그렇게 지나갔다. 어느 날 역시 인사를 받으신 후 비 맞은 옷을 걸고 돌아서면서 교수님은 단호한 목소리로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손군 자네는 앉아 있어”라고소리쳤다. 황당한 분위기 속에 다시 교수님의 굵은 목소리가 울렸다.

“모두 다 일어나라니까, 손군 자네는 앉아 있으라니까.”

가슴에 담은 교수님의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나는 지난 1년 반 동안 손군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우리 독일이 절대로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무엇을 잃어버렸다고 깨달았다. 그것은 ‘존중(Respekt)’이다. 알다시피 독일은 유럽에서 훈육이 가장 엄격했던 나라였다. 그러나 우리는 ‘발전’이란 이름아래 ‘물질화’되고 ‘미국화’되면서 우리 고유의 가치와 도덕을 잃어버렸다. 우리는 동양적 가치를 배우고 존중하면서, 우리 가치를 다시 세워야 한다. 여러분은 내가 얼마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했는지 잘 알 것이다. 여러분이 나를 선생님으로, 내 말을 받아들인다면, 오늘 하루는 나의 뜻을 새기는 마음으로 서서 듣고 얘기하자. 손군은 앉아 있어, 내 부탁이다.”

세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1993년 봄 학기. 강사로 강단에 선 첫 시간, 120여 명의 학생 가운데 7명이 운동모를 쓰고 있었다. 7년 전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라 수업 후 학과장님에게 물었다. `얘들이 이런데 그냥 두어야 하냐'고. 대답은 `왜 애들이 자느냐, 자지 않고 수업을 방해하지 않고 그냥 모자만 쓰고 있다면 그냥 두는 게 좋다, 예전과는 다르다'는 답이 왔다.

두 번째 시간, 역시 모자들이 보였다. 차분하게 내 체험을 얘기하고, 대학교는 사회에 나가려는 수련의 과정이다, 우리는 우리만의 미풍양속이 있다, 결코 그것을 잃어버려서는 안 된다, 나는 선생으로서 최선을 다 하겠다, 여러분이 사회에 나가 직장을 다니면서도 모자를 계속 쓸 것이라면 좋다, 그렇지 않다면 그리고 나를 선생님으로 받아들인다면 존경의 표시로 모자를 벗으라고 했다.

다 벗었다. 그 이후에도 그런 상황이면 똑같이 말했고, 똑같은 응답이 왔다. 깊이 깨달았다. 학생들이 아니라 부모와 어른들의 잘못이다, 올바로 인도하면 따른다, 바른 교육이 필요하다.

1993년 여름. 학자로서 첫 논문 발표에서, 독일 통일 현장 체험을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평화통일은 북한 주민에 의해서 이루어질 수 있다, 그들이 북한 체제가 아니라 우리 체제에서 더 많은 자유와 민주주의와 복지가 있다고 깨달을 때 그들은 움직일 것이다, 체제 경쟁이 끝나 앞선 우리지만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적 민주화의 진행을 더 재촉해야 한다, 그러할 때 통일의 시기는 더 일찍 다가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변함없었던 소신이다. 

2013년 봄. 해외에서 고위급 북한대표와 마주했다. 며칠 간의 안면을 토대로 거침없이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했다. 조용히 듣던 그가 낮은 음성으로 응수했다.

“손 선생님, 하지만 우리 공화국에서는 자식이 돈 때문에 부모를 죽이는 일은 없습니다.”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사회의 좋지 않고 잘못된 부분만 골라서 북한은 매일의 총화에서 사상교육과 세뇌교육을 할 것이다. 남한이 잘 산다는 사실을 북한 주민은 다 알고 있다. 수십 배나 잘 사는 우리 사회와 함께 하려는 결단을 그들이 하지 않는 큰 이유일 것이다.

2021년 현재. 하루가 멀다고 이런 천륜을 저버린 범죄가 일어난다. 유산, 주식, 집값으로 부익부 빈익빈은 갈수록 심해진다. 영어를 안다는 사람도 신문과 인터넷에 이해할 수 없을 단어가 가득하다. 이래도 좋은가? 이것이 발전인가? 우리의 전통 미덕은 어디로 갔는가? 최악의 독재국가 북한에서는 폭력을 거머쥔 국가가 문제다. 우리는 국민이 문제이지만 국가, 부모, 어른의 책임이다.

발전도 물질화도 미국화도 좋다. 그러나 우리가 결코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우리의 가치, 도덕은 지켜야 옳지 않겠는가? 아무리 바빠도, 시간을 쪼개더라도 훈육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후세들은 깨우치고 따를 것을 체험으로 믿는다.

우리 사회를 자신들이 지향해야할 체제로 북한 주민이 선택하고 결단하여 행동으로 실행될 통일, 이 소신이 흔들린다. 경제력이 50배 이상이나 격차가 나는 현 한반도 상황에서 통일의 길이 멀리만 느껴진다. 그 많은 대통령 후보자들도 여기엔 관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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