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화협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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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4] "서독마르크(DM) 알을 낳은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 (상)" (매경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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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607회 작성일 22-02-03 2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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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4] "서독마르크(DM) 알을 낳은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 (상)" (매경 프리미엄: 2021.12.13)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12/31207/

서독 니더작센주 헬름슈테트(Helmstedt)와 동독 작센안할트주 마리엔보른(Marienborn)은 동서독 접경지역에서 가장 크고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접경통과지역이었다. 접경통과로가 가장 밀집한 지역으로 동서독을 오가는 7개의 철도 노선, 3개의 수로, 4개의 도로가 여기에 위치했다.

영국군과 소련군이 마주 보던 시기는 물론이고 서독과 동독으로 나뉜 초기에도 일꾼들은 양 지역을 오갔다. 1952년 5월 26일 동독이 접경선을 막아버리자 일꾼들은 일자리를 잃어버렸고. 많은 공장도 문을 닫아야만 했다. 지역의 가장 큰 기업인 설탕공장도 운명을 다했다.

헬름슈테트의 갈탄 채굴도 쇠퇴했고, 동독에 속하게 된 하릅케(Harbke) 석탄발전소는 더 이상 서쪽으로 전기를 보내주지 않았다. 동서독 간의 석탄과 전력 협력은 긴장 완화의 바람이 분 1970년대가 되어서야 재개되었다. 하릅케 발전소 기술자가 가족과 함께 석탄열차에 숨어 서독으로 넘어오는 등 중요 접경통과지역이었던 만큼 수많은 탈출 시도가 있었다.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는 동독이 접경지역에 설치했던 통과검문소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중요했던 곳이다. 동독이 부과한 '최소환전(Mindestumtausch)' 의무규정(지난 칼럼 '샬호수 통일휴게소' 참조)을 통해 서독마르크(DM)를 가장 많이 획득한, 황금알을 낳는 거위 같은 통과소였다. 이곳을 통일독일은 '독일분단기념관(Gedenkstätte Deutsche Teilung)'으로 활용하고 있다.

▲ 마리엔보른 독일분단기념관 / 사진=손기웅

동독의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는 지리적으로 서베를린과 가까운 곳으로, 서독으로부터 서베를린으로 들어가는 화물차량의 주 통과지로 활용되었다. 또한 동독행뿐만 아니라 동독을 거쳐 폴란드, 헝가리 등 동구 사회주의국가로 가려는 여행자들을 검문하는 곳이기도 했다. 1945년부터 1990년까지 서독의 2번 고속도로(A2)를 타고 서베를린으로 향하는 모든 차량은 이곳을 거쳐야 했다.

▲ 서베를린행 관문 헬름슈테트-마리엔보른 접경통과지점, 붉은 접경선 왼쪽이 서독이고 오른쪽이 동독이다. / 사진=강동완

1945년 전쟁이 끝나자 접경지역인 이곳에는 전승 4국인 미·영·불·소가 공동으로 운영하는 통과검문소가 세워졌다. 그러나 곧 정치적 갈등과 냉전이 시작되자 소련군 점령지인 마리엔보른과 영국군 점령지인 헬름슈테트 통과소로 분리되었다. 마리엔보른 검문소는 소련의 상징인 붉은 별, 망치, 낫으로 장식되었다. 서방연합국은 헬름슈테트에 '체크포인트 알파(Checkpoint Alpha)'라는 이름의 통과소를 만들었다. 당시에는 이곳이 서독으로부터 소련이 점령했던 동독을 거쳐 서베를린으로 들어가는 유일한 통과지점이었다.

◆서방연합군이 운영한 세 개의 통과검문소, 체크포인트(Checkpoint)

서방연합군은 독일 분단 기간 접경지역에 세 개의 통과검문소를 운영했다. 영국군 점령지이자 서독 쪽 접경지인 헬름슈테트에 위치하여 서독에서 동독을 오가는 인력과 차량을 검문했던 체크포인트 알파(Checkpoint Alpha), 미군이 점령했던 서베를린 남부지역에 위치하여 동독을 거쳐 서베를린을 출입하는 인력과 차량을 검문했던 체크포인트 브라보(Checkpoint Bravo), 베를린의 중심이자 서베를린 쪽에 위치하여 동베를린으로 출입하는 인력과 차량을 검문했던 체크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 등이다.

서방연합군들은 접경검문소에 대해 국제법적인 주권을 가졌다. 헬름슈테트에 위치했던 체크포인트 알파는 별도의 건물로 지어졌고, 서방연합군은 통행이 보장되었다. 체크포인트 알파가 해체되기 직전까지 헬름슈테트 시내에는 3국의 군인들이 상주했다.

▲ 1950년대 헬름슈테트 쪽에 세워진 서방연합군 검문소 체크포인트 알파, 사람들이 서 있는 차단기 뒤편으로 소련군 검문소가 보인다. / 사진=Western Allies Berlin

▲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직후 수많은 차량이 서베를린을 오가고 있다. 위 사진 중앙에 멀리 보이는 건물이 체크포인트 브라보, 이제는 상업지구 속 작은 박물관이다(아래 사진). / 사진=손기웅

▲ 베를린 체크포인트 찰리의 50년대와 현재의 모습 / 사진=손기웅

1950년 동독의 접경경찰이 소련군으로부터 마리엔보른 통과검문소의 통제를 넘겨받았다. 동독은 1952년 5㎞ 범위의 차단지역, 500m 범위의 보호지대를 설치하였다. 검문소는 처음에는 목조 가건물 형태였으나, 1972년 동서독 간에 기본조약이 체결되고, 서독과 서베를린 사이를 통행하는 인력과 차량이 증가하자 검문소 건물과 주차장이 증축되어야 했다.

동독은 1972~1974년 분단선에서 1.5㎞ 떨어진 지금의 접경통과검문소를 만들었다. 신축공사를 하면서 서독 쪽에서 통과검문소를 더 이상 볼 수 없게 만들었고, 도로와 주차장도 넓은 대지에 여유 있게 마련했다. 대부분의 통행은 서베를린으로 오가는 서독의 승용차와 화물차였다.

1985~1989년 동안에만 3460만명의 사람들이 이곳을 거쳤다. 장벽이 개방됨에 따라 모든 여행객들은 A2 고속도로를 중단 없이 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접경통과검문소는 1990년 7월 1일 동서독 '화폐·경제·사회통합협정'이 발효되자 45년 만에 폐쇄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이후 이 건물은 한동안 방치되다가 1996년 8월 13일 현재와 같은 기념관으로 문을 열었다.

▲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포스터/ 사진=손기웅

동독은 접경지역 주요 통과지점에 동독의 국장(國章)을 넣은 탑을 세웠다. 통일 이후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가 위치한 A2 고속도로에는 국장을 뺀 원만 남은 탑을 기념으로 남겨 분단의 아픔을 기억하도록 한다.

▲ 통일이 왔다는 것을 알리듯 분단의 상징 뒤로 무지개가 우리를 맞았다. A2는 이제 말 그대로 '아우토반(Autobahn)'이다. / 사진=강동완

◆ 손들의 아치

헬름슈테트 인근의 A2 고속도로상에 '손들의 아치(Die Wölbung der Hände)'라는 조형물이 있다. 두 체제로 분단되었던 독일이 다시 하나로 된다는 의미로 서로 맞잡은 손을 형상화했다. 평화와 자유, 그리고 인간 경시에 대한 경고의 의미를 담았다. 높이 9m, 무게 50t에 이르는 이 작품은 1995년 10월 3일 프랑스 조각가 조제프 카스텔에 의해 제작되었다.

설치된 지 15년이 지난 2010년 10월 3일, 독일 통일 20주년을 맞아 전 유럽에 걸쳐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을 연결하는 도로인 '유럽평화조각상도로(die Europäische Skulpturenstraße des Friedens)'의 하나로 포함되었다.

▲ 프랑스 작가에 의한 독일 통일 상징 조각상, 동서독에 더해 독·불 간 화해를 보여주는 듯하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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