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화협력연구원

손기웅원장 자료실

[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5] "서독마르크(DM) 알을 낳은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 (하)" (매경 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86회 작성일 22-02-03 22:26

본문

[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5] "서독마르크(DM) 알을 낳은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 (하)" (매경 프리미엄: 2021.12.20)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12/31238/

마리엔보른 접경통과검문소에는 1000명 이상의 국경수비대, 비밀경찰 슈타지, 관세청, 동독국립은행, 민간인 자원자(사실상 비자발적) 등이 여행자, 차량, 화물을 물샐틈없이 검문했다. 지휘통제소, 여권심사실, 차량수색실, 신체수색실, 세관, 은행, 식당, 감시탑과 초소, 발전소, 요원 숙소 등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하다 싶은 통과여행객은 옷을 완전히 벗어야 하는 신체검문을 당하였다. 여행가방은 엑스레이 검사를 받았고, 군견을 동원한 차량검사에도 의심이 들면 정밀검사실로 끌고 가 밑바닥은 물론 기름 탱크 속까지 샅샅이 조사하였다. A2 고속도로 위에 육교형 감시다리를 놓고 그 위에서 오가는 차량을 내려다보며 감시의 눈을 번득였다. 검문소의 1차 목적이 탈출 방지였다.

▲ 마리엔보른 독일분단기념관 간판 / 사진=손기웅

▲ 차량들이 몇 겹으로 줄지어 각 통로로 진입한다. 우선 여권을 제출하여 1차 심사를 받고나면 검사원들이 나와서 여행객과 차량에 대한 상세 검사를 한다. / 사진=손기웅

▲ 동독 국가안보성 슈타지 요원이 전담한 여권심사는 요주의 명단에 기록된 특정 용의자 혹은 차량과 대조하는 것이 주 임무였다. / 사진=손기웅

▲ 만성적 외화 부족에 시달린 동독은 열대과일, 커피 등을 수입하는 데 큰 제한이 있었다. 파인애플이나 바나나를 먹는다는 것은 대단히 사치스럽고 특별한 날에만 가능한 '행사'였다. 동독 친지를 방문하는 서독인에게, 서독을 방문하고 돌아가는 동독인에게 열대과일이나 서독 소시지는 필수품이었다. 동독 내에서는 안 되는 일도 되게 만드는 '윤활유'였다. / 사진=손기웅

▲ 통과차량 운전자는 검사 시에 엔진 뚜껑과 트렁크를 열고, 뒷좌석도 앞으로 젖혀 놓으란 지시(왼쪽 사진)에 따라야 했다. 그런 상태에서 세관원은 벽에 붙여진 지침 - 탈주를 방지하기 위해 승용차 점검 시 눈여겨 검사해야 할 부분(오른쪽 사진의 붉은색) - 에 따라 샅샅이 검사했다. / 사진=손기웅

▲ 세관원과 군견의 검사에도 의심이 들면 차량을 정밀검사실(가운데 사진)로 끌고 가서 밑바닥을 점검하고, 각종 쇠줄(오른쪽 사진)을 연료통이나 공간 사이에 찔러 무엇을 숨겨 놓았는지를 확인하였다. / 사진=손기웅

▲ 동독 세관원에 대한 차량검사 교육 및 사격 훈련 / 사진=손기웅

▲ 삼엄한 감시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찾으려는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으나, 성공보다 실패가 많았다. 1988년 5월 11일 오후 2시 15분, 서독인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숨어 탈주하려던 2명의 동독 주민이 잡혔다. 슈타지가 당일 작성한 경위보고서(왼쪽 위 사진)와 체포 사진이다. / 사진=손기웅

▲ 이상자로 지목되면 옷을 완전히 벗어야 하는 굴욕을 감수해야 했다. 의심이 든다, 들지 않는다의 판단은 동독 세관원 마음 나름이었다. 신체검사실의 실제 모습. / 사진=강동완

▲ 접경통과검문소에 근무하는 세관원은 동독인민군에서 선호되는 일자리였다. '영광의 근무'라 불리는 세관원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충성도와 서독체제에 대한 확고한 적대의식이 정립되어야 했다. 세관원에게는 평균 이상의 보수는 물론이고 주택 배정에 있어서도 혜택이 주어졌다. 세관원 모집 광고. / 사진=손기웅

▲ A2 고속도로 위에 세워진 육교감시다리의 과거와 현재. 아래를 오가는 차량을 동독 감시원이 지켜보았다(사진 위). / 사진=손기웅

동독을 방문하는 모든 여행자들은 의무적으로 동독 체류 1일당 약 25서독마르크(DM)를 동독마르크(M)로 환전해야 했다. 1964년부터 실시된 이른바 '최소환전'(Mindestsumtausch) 규정이다. 서독 DM와 동독 M 간 공식 환율이 1대4였는데도 동독은 1대1의 비율로 바꾸도록 했다. 서독 25DM가 동독 100M였음에도 25M만 줌으로써 동독은 1인당 75M를 통행세로 징수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도로사용료도 지불해야만 했다. 황금알 DM의 징수를 위해 통과검문소에는 동독국립은행 출장소가 상주하였다. 당시 이 출장소의 수입은 동독이 외환을 획득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동독은 획득한 서독 DM를 서방으로부터 상품을 수입하는 데 사용했다.

▲ 마리엔보른 통과검문소에 실재했던 동독국립은행 출장소 / 사진=손기웅

▲ 감시탑은 보존되었으나 부속건물은 터만 남았다. 8차선으로 확장된 속도 무제한 '아우토반' 위로 통일독일이 내달린다. / 사진=강동완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ITE MA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