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1] "엘베강의 갈림길 쉬나켄부르크" (매경프리미엄: 2021.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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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290회 작성일 22-02-03 21:49본문
[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1] "엘베강의 갈림길 쉬나켄부르크" (매경프리미엄: 2021.11.22)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11/31121/
쉬나켄부르크(Schnackenburg)는 서독 니더작센주의 가장 작은 시로 엘베강을 사이에 두고 동독의 브란덴부르크주를 마주 보는 접경 항구다. 아래 사진의 갈색 점선이 접경선으로 왼쪽이 서독(BRD), 그 외 지역이 동독(DDR)이다. 접경 하천을 이루던 엘베강이 쉬나켄부르크를 지나면서 동독 내륙의 강이 된다.
▲ 엘베강의 동서독 갈림길에 위치한 쉬나켄부르크 / 사진=손기웅
쉬나켄부르크는 소규모 도시였지만 엘베강을 오가는 선박들로부터 징수한 세금 수입으로 발전했다. '작은 도시-큰 항구(Kleine Stadt-Großer Hafen)'라는 이름을 얻었다. 1854년 세금 징수가 폐지되자 시 경제는 점차 퇴보하기 시작했다.
쉬나켄부르크가 다시 중요하게 떠오른 것은 1945년 냉전이 시작되면서다. 분단 상황에서 엘베강의 접경선 관리 및 안전을 위한 세관선의 항구가 된 것이다. 서독은 1965년 50척까지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항구를 증축하고 보강하여 통일 전까지 가장 큰 강변 세관선박지로 활용하였다.
엘베강 상류인 남동쪽 방향으로 항해하는 서독 선박이 동독 영토로 진입하기 직전의 항구로서 해마다 약 1만2000척의 배가 이곳을 지났다. 베를린에 물품을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수로였다. '작은 도시-큰 항구' 명성을 다시 찾았다.
동독이 영토 내 하천 통항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서독 선박의 화물이 규정 이상으로 많은 경우 쉬나켄부르크에서 하역해 배의 무게를 줄여야만 했다. 1968~1969년 겨울 엘베강이 오랫동안 얼어붙었을 때 쉬나켄부르크에는 60척 이상의 배가 묶였다.
선박 통행이 많아지자 당연히 동독의 감시는 그 이상으로 강화되었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듯이 동독은 1972년부터 엘베강둑에 약 3.2m 높이의 강철 철조망, 자동발사장치 SM-70, 콘크리트 감시탑과 경계탑 등의 통제시설을 구축하였다. 동독인민군은 수시로 훈련하였다.
▲ 쉬나켄부르크 건너편에 구축한 동독 통제감시시설 / 사진=손기웅
▲ 동독인민군의 엘베강 훈련 상황 / 사진=손기웅
1976년 쉬나켄부르크항은 서독의 신문과 방송에 집중 조명되었다. 12월 1일 동독 데사우(Dessau) 출신 한 부부의 탈출 사건이다. 직접 만든 소형 잠수정을 타고 엘베강을 순시하는 동독 감시선 아래로 잠항하여 서독으로 오고자 했다. 불운하게 악화된 날씨로 말미암아 그가 도착한 곳은 자유의 땅이 아니라 동독강턱이었다. 목숨을 잃지 않은 것으로 위안 삼아야 했다.
항구 강변에는 이 지역에서 소련군 점령 시기에 그리고 동서독 분단 시기에 서독으로 탈출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추모판이 서 있다. 최초 희생자는 1945년 5월 22일 술 취한 소련군 병사에 의해 사살된 리하(Riha) 가족이었다. 1986년 4월 15일 5℃의 찬 엘베강에 게르브란트(Gerbrandt) 형제가 뛰어들었다. 서쪽 강둑에 도착한 형 아르민(Armin)이 애타게 부르는 가운데 동생 올라프(Olaf)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희생자였다.
▲ 쉬나켄부르크 지역 희생자 추모판 / 사진=손기웅
쉬나켄부르크 시민들은 1995년 항구 '어부의 집(Fischerhaus)'을 활용하여 '쉬나켄부르크 접경박물관(Grenzlandmuseum Schnackenburg)'을 열었다. 바로 앞 엘베강에서 일어났던 동서독 간 질곡의 분단 역사, 동독의 하천 통제 상황 등을 소개하고 있다.
▲ 쉬나켄부르크 접경박물관 전경 / 사진=손기웅
박물관 옆 엘베강둑에는 당시 동독이 사용했던 해상감시선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강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들의 숨을 멎게 했을 배는 단단히 묶여 영원히 멈추어 섰다. 문득 뇌리를 스친다, 한스를 덮친 그 배가 아닐까?(18회 "별이 된 한스와 미하엘" 참조)
▲ 길이 9.75m, 폭 3.2m, 홀수 0.87m, 380마력 쌍발엔진의 동독 국경감시선, 자유를 막았다. / 사진=손기웅
쉬나켄부르크 역시 '그뤼네스 반트'의 부분으로서 '엘베강 천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속한다. 분단 시기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수달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 수달의 자취를 쫒아 자전거로 생물권보전지역을 탐방하는 즐거움을 소개하는 안내판 등 곳곳에 하나되고 보호되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자랑하고 있다.
▲ 엘베강 천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수달 투어 안내판 / 사진=손기웅
엘베강은 그때도 지금도 양쪽을 이어준다. 바보 같은 인간, 멍청이 인간을 조용히 삭이며 독일의 중심이 된 엘베강과 이제 작별할 때이다.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1/11/31121/
쉬나켄부르크(Schnackenburg)는 서독 니더작센주의 가장 작은 시로 엘베강을 사이에 두고 동독의 브란덴부르크주를 마주 보는 접경 항구다. 아래 사진의 갈색 점선이 접경선으로 왼쪽이 서독(BRD), 그 외 지역이 동독(DDR)이다. 접경 하천을 이루던 엘베강이 쉬나켄부르크를 지나면서 동독 내륙의 강이 된다.
▲ 엘베강의 동서독 갈림길에 위치한 쉬나켄부르크 / 사진=손기웅
쉬나켄부르크는 소규모 도시였지만 엘베강을 오가는 선박들로부터 징수한 세금 수입으로 발전했다. '작은 도시-큰 항구(Kleine Stadt-Großer Hafen)'라는 이름을 얻었다. 1854년 세금 징수가 폐지되자 시 경제는 점차 퇴보하기 시작했다.
쉬나켄부르크가 다시 중요하게 떠오른 것은 1945년 냉전이 시작되면서다. 분단 상황에서 엘베강의 접경선 관리 및 안전을 위한 세관선의 항구가 된 것이다. 서독은 1965년 50척까지 선박이 정박할 수 있도록 항구를 증축하고 보강하여 통일 전까지 가장 큰 강변 세관선박지로 활용하였다.
엘베강 상류인 남동쪽 방향으로 항해하는 서독 선박이 동독 영토로 진입하기 직전의 항구로서 해마다 약 1만2000척의 배가 이곳을 지났다. 베를린에 물품을 공급하는 가장 중요한 수로였다. '작은 도시-큰 항구' 명성을 다시 찾았다.
동독이 영토 내 하천 통항을 엄격히 통제했기 때문에 서독 선박의 화물이 규정 이상으로 많은 경우 쉬나켄부르크에서 하역해 배의 무게를 줄여야만 했다. 1968~1969년 겨울 엘베강이 오랫동안 얼어붙었을 때 쉬나켄부르크에는 60척 이상의 배가 묶였다.
선박 통행이 많아지자 당연히 동독의 감시는 그 이상으로 강화되었다. 아래 그림이 보여주듯이 동독은 1972년부터 엘베강둑에 약 3.2m 높이의 강철 철조망, 자동발사장치 SM-70, 콘크리트 감시탑과 경계탑 등의 통제시설을 구축하였다. 동독인민군은 수시로 훈련하였다.
▲ 쉬나켄부르크 건너편에 구축한 동독 통제감시시설 / 사진=손기웅
▲ 동독인민군의 엘베강 훈련 상황 / 사진=손기웅
1976년 쉬나켄부르크항은 서독의 신문과 방송에 집중 조명되었다. 12월 1일 동독 데사우(Dessau) 출신 한 부부의 탈출 사건이다. 직접 만든 소형 잠수정을 타고 엘베강을 순시하는 동독 감시선 아래로 잠항하여 서독으로 오고자 했다. 불운하게 악화된 날씨로 말미암아 그가 도착한 곳은 자유의 땅이 아니라 동독강턱이었다. 목숨을 잃지 않은 것으로 위안 삼아야 했다.
항구 강변에는 이 지역에서 소련군 점령 시기에 그리고 동서독 분단 시기에 서독으로 탈출하다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명복을 비는 추모판이 서 있다. 최초 희생자는 1945년 5월 22일 술 취한 소련군 병사에 의해 사살된 리하(Riha) 가족이었다. 1986년 4월 15일 5℃의 찬 엘베강에 게르브란트(Gerbrandt) 형제가 뛰어들었다. 서쪽 강둑에 도착한 형 아르민(Armin)이 애타게 부르는 가운데 동생 올라프(Olaf)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마지막 희생자였다.
▲ 쉬나켄부르크 지역 희생자 추모판 / 사진=손기웅
쉬나켄부르크 시민들은 1995년 항구 '어부의 집(Fischerhaus)'을 활용하여 '쉬나켄부르크 접경박물관(Grenzlandmuseum Schnackenburg)'을 열었다. 바로 앞 엘베강에서 일어났던 동서독 간 질곡의 분단 역사, 동독의 하천 통제 상황 등을 소개하고 있다.
▲ 쉬나켄부르크 접경박물관 전경 / 사진=손기웅
박물관 옆 엘베강둑에는 당시 동독이 사용했던 해상감시선 실물이 전시되어 있다. 강을 오가며 수많은 사람들의 숨을 멎게 했을 배는 단단히 묶여 영원히 멈추어 섰다. 문득 뇌리를 스친다, 한스를 덮친 그 배가 아닐까?(18회 "별이 된 한스와 미하엘" 참조)
▲ 길이 9.75m, 폭 3.2m, 홀수 0.87m, 380마력 쌍발엔진의 동독 국경감시선, 자유를 막았다. / 사진=손기웅
쉬나켄부르크 역시 '그뤼네스 반트'의 부분으로서 '엘베강 천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에 속한다. 분단 시기 거의 자취를 감추었던 수달이 다시 활기를 찾았다. 수달의 자취를 쫒아 자전거로 생물권보전지역을 탐방하는 즐거움을 소개하는 안내판 등 곳곳에 하나되고 보호되고 있는 자연생태계를 자랑하고 있다.
▲ 엘베강 천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 수달 투어 안내판 / 사진=손기웅
엘베강은 그때도 지금도 양쪽을 이어준다. 바보 같은 인간, 멍청이 인간을 조용히 삭이며 독일의 중심이 된 엘베강과 이제 작별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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