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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7] "새장 속의 카나리아 회텐스레벤" (매경 프리미엄: 2022.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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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30회 작성일 22-02-03 2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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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까지 - 27] "새장 속의 카나리아 회텐스레벤" (매경 프리미엄: 2022.01.03)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1/31322/

마리엔보른 기차역에서 약 18㎞, 동서독 접경지역 답사의 첫 출발지인 뤼벡-쉬루툽 접경기록보존소에서 300㎞ 이상 달려 회텐스레벤(Hötensleben) 마을로 접어든다. 콘크리트 장벽을 하나 지나니 양 옆으로 확 트인 공간에 분단이 마중 나온다. 콘크리트 장벽이 또 하나 마주 서고 차를 세웠다.

▲ 회텐스레벤 접경기념물, 좌우 콘크리트 장벽 사이의 공간이다. / 사진=손기웅

서독 니더작센주 쇠닝겐(Schöningen)을 마주보는 동독 작센안할트주 접경지 회텐스레벤을 가르는 접경선은 좁은 개천이다. 뛰어넘을 수 있는 거리의 천 위에 놓인 다리 중간에 40년 분단선이 그어져 있다. 다리 앞에 '1989년 11월 19일 오전 7시 50분까지 독일과 유럽이 분단된 곳'이라는 안내지도판이 서 있다. 베를린장벽 붕괴 후 10일이 지나서야 이곳에도 자유가 왔다.


▲ 쇠닝겐과 회텐스레벤 사이 접경천과 다리, 다리 건너편이 서독 쇠닝겐이다. / 사진=강동완·손기웅

2차선 도로를 사이에 둔 회텐스레벤 접경기념물(Grenzdenkmal)은 잘 보존된 동독 접경방어시설로 유명하다. 동독은 1970년대 중반 이곳에 불과 100여 m 간격으로 두 개의 콘크리트 장벽을 세웠다. 하나는 서독으로의 탈출 방지용이고, 하나는 주민 시야 차단용이었다.

▲ 사진 위가 서독을 향한 장벽, 아래가 대주민용으로 철조망에 이어 콘크리트 장벽이다 / 사진=손기웅

장벽이 열리자마자 설립을 구상하고 1993년 문을 연 회텐스레벤 접경기념물은 1985년 당시 현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길이 350m의 두 장벽, 그 사이 통제지역에 강철로 만든 대전차장애물, 철조망, 지뢰밭, 콘크리트 감시탑, 경고판 등 모든 시설이 원형 그대로 6.5㏊ 용지에 보존돼 있다.

▲ 언덕에도 길가에도 감시가 번득였다. / 사진=손기웅

▲ 강철의 대전차장애물, 쇳덩이의 무게만큼이나 지금도 무겁게 다가온다. / 사진=강동완

마을 사람들이 육성으로 당시 상황을 증언한 안내문이 가슴을 울린다. "나는 내 처지를 자유를 그리워하지 않는 새장에 갇힌 카나리아새와 비교했다. 우리는 여기서 그렇게 자랐다. 우리는 자유를 그리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유가 뭔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 도로 옆 안내판에 동독 주민들이 당시를 증언하고 있다. / 사진=손기웅

동독 국경수비대가 차량순찰로로 활용하던 콜론넨베크(Kolonnenweg)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접경선 전역에 가로 7개, 세로 4개로 총 28개의 구멍 뚫린 블록으로 연결된 도로는 수십 년이 지나도 여전히 견고하다. 끝없이 이어진 콜론넨베크는 이젠 산책로다. 한적한 저녁 도란도란 말을 이으며 걸어가는 연인에게 8눈의 감시탑이 고개를 숙이고 있다.

▲ 자유에 고개 숙인 감시탑 / 사진=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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