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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39] "포인트 알파, 경종 추념 만남의 공간" (매경프리미엄, 202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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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00회 작성일 22-03-30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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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39] "포인트 알파, 경종 추념 만남의 공간" (매경프리미엄, 2022.03.28)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3/31684/


포인트 알파 접경기념관은 잘못된 과거를 보여주면서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꾸짖고, 그로 인한 희생을 추념하고, 새로운 미래를 위해 나아가려는 마음들이 모이는 공간이다. 정식 이름은 '경종과 추념과 만남의 장소 포인트 알파(Mahn-, Gedenk- und Begegnungsst ätte Point Alpha)'다. 서독 헤센과 동독 튀링겐 경계에 위치하며, 규모와 범위로 볼 때 가장 큰 분단 역사의 교육 장이다.

기념관은 NATO군 최전방 기지였던 미군 주둔지 포인트 알파, 분단선을 따라 분단 상황을 보여주는 야외 접경박물관 '희망의 길(Weg der Hoffnung)', 동독군 순찰로 코론넨벡 위에 세워진 실내박물관 '접경선 위의 집(Haus auf der Grenze)'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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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 알파 접경기념관 배치도로 붉은 점선이 분단선이다. 좌측 아래가 미군기지 포인트 알파, 분단선 위 동독 접경방어시설을 따라 만든 ‘희망의 길’, 우측 중앙 푸른색이 ‘접경선 위의 집’이다. / 사진=손기웅

NATO 최전방 기지 포인트 알파

40년 동안 바르샤바조약기구(WTO) 군과 눈을 마주 보며 적대했던 장소로 1989년까지 미군이 유럽 지역에서 운영했던 가장 중요한 최전방 주둔지다. 미·소 양 진영 갈등의 상징이었던 이곳은 당시 대치 상황과 미군시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야외의 역사적 설명과 군장비 전시, 병사(兵舍)를 이용한 실내전시관에는 NATO와 WTO의 군사력 배치, 공격과 방어 계획도 등을 지도와 문서, 사진과 영상으로 자세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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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인트 알파 입구로 뒤쪽에 감시망루가 보인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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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시망루에서 본 미군 기지 및 건너편 동독쪽 전경, 지난 칼럼에서 소개한 B.F.가 총을 맞은 곳이다. / 사진=손기웅

기지 내 광장에서 2005년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통일된 독일이 독일 통일과 유럽의 자유와 평화에 기여한 공로로 통일 당시 미국, 소련, 독일의 세 수반에게 통일 15주년을 맞아 이곳에서 '포인트 알파상(Point Alpha Preis)'을 수여한 것이다. 한국과 독일이 매년 번갈아가며 개최하는 '한독포럼'의 2017년 행사도 여기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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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지 내 광장, 2005년 ‘포인트 알파상’ 행사 사진이 전시되어있다. / 사진=강동완·손기웅

이 지역은 이른바 '풀다갭(Fulda Gap)'에 속하는 지역이다. 풀다갭은 동독 튀링겐으로부터 서독 프랑크푸르트에 이르는 구릉의 평야지대로 WTO군이 침공할 경우 주공노선(主攻路線)이었다. 1813년 나폴레옹이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패한 후 탈주로로 택했던 통로이기도 하다.

WTO와 NATO군이 맞붙었다면 풀다갭을 중심으로 한 동서독 접경 전역은 재래식은 물론이고 전술핵무기로 불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독일이 미·소 전쟁의 중심 무대로 계획되었던 것이다. 분단 독일에 보이지 않게 도사린 어두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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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은 1980년대 미군의 풀다갭 작전도로 주황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WTO군의 예상 침공도이고, 검은색은 양 군의 배치도다. 아래 사진은 NATO군의 반격계획이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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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풀다갭을 중심으로 동서독 접경지역에 부설된 지뢰지대, 숨이 막힌다. / 사진=손기웅

희망의 길

'희망의 길'이라 이름 지어진 분단선을 걸으면 동독의 탈출 방지시설물과 그뤼네스반트가 된 현재의 생태계, 갈등과 평화의 과거와 현재를 느낄 수 있다. 안내자 설명을 하나라도 빠뜨리지 않으려 귀를 기울이는 방문객 사이 멀리 나무 벤치에 노부부가 보인다. 많은 사연이 있으리라 여겨지는 분위기지만, 아름답고 부러운 통일된 독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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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망의 길’을 가운데 두고 미군 감시망루와 동독 콘크리트감시탑이 마주서 이제는 인사를 나누고 있다. 코론넨벡 멀리 실내박물관 ‘접경선 위의 집’ 푸른 지붕이 보인다. / 사진=강동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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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의 망중한(忙中閑), 동독 집들이 통일 후 색색 옷을 입었다. / 사진=강동완

접경선 위의 집

'접경선 위의 집'은 내부로 코론넨벡이 지난다. 순찰로 바로 위에 지은 박물관이다. 죽음의 띠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띠 위에서 당시 현장을 체험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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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순찰로가 건물 내부로 이어지는 ‘접경선 위의 집’ / 사진=손기웅

1층에는 당시 동독군의 전개 상황과 일상, 관련 지휘 문건과 기록문이 사진 및 영상과 함께 전시되어 있다. 냉전 상황에서 동서독뿐만 아니라 세계 최강대국 미·소의 갈등 상황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또한 '자유(Freiheit)'라는 주제로 동독에서 일어난 억압과 독재, 자유를 위한 비폭력 투쟁, 특히 1989년 동독에서 일어난 평화혁명을 멀티미디어 영상물을 통해 재현하고 있다. 동독이 속한 WTO군, 특히 소련군과 동독군 간 형제애, 전우애 관련 선전물이 눈길을 끈다. NATO(1949년 창설)에 대항하기 위해 1955년 소련이 위성 국가인 동독, 불가리아,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폴란드, 루마니아와 만든 상호방위기구 WTO는 소련 해체와 함께 1991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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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급형제(Klassenbrüder)’, ‘무기형제(Waffenbrüder)’라며 WTO군의 단결을 선전하고 있다. / 사진=손기웅

독일'민주'공화국

동독의 정식 명칭은 독일민주공화국이나, 이름만 민주국가였다. 1945년 발터 울브리히트(Walter Ulbricht)는 전쟁이 끝나자마자 소련군 점령 당시의 동독 지역에서 "민주적으로 보여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것을 손 안에 쥐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곧 그는 동독공산당 서기장과 국가수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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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적으로 보여져야 한다... / 사진=손기웅

누가 또 당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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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도 피할 수 없었던 비밀경찰 슈타지의 도청 / 사진=강동완

그뤼네스반트

건물 2층에는 이 지역을 포함하는 그뤼네스반트 현황과 지역 생물다양성을 소개하고 있다. 그뤼네스반트 전시실 한켠에서 한반도 DMZ를 만난다. 반갑고도 착잡하다, '군사분계선 위의 집'을 개장할 날이 언제 올 것인가,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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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뤼네스 반트 전시실에서 자신의 DMZ 사진과 함께 한 MBC 전영재 기자 / 사진=손기웅

원탁

'접경선 위의 집' 옆에 의미가 큰 두 개의 상징물이 있다. 하나는 '원탁(Runde Tisch)'이라는 콘크리트로 만든 둥근 탁자다. 베를린장벽 붕괴 직후 동독에서는 체제 변화를 요구하는 주요 시민단체들이 둥근 탁자에 함께 앉아 향후 정국을 논의했다. 임시정부 역할을 한 것이다.

원탁회의가 통일에 기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철거된 동독 접경 장벽에서 나온 콘크리트를 활용해 만들었다. 원탁에는 "독일 조국을 위한 통일, 정의, 자유"가 새겨져 있다. 의자 수는 16개로 평화와 자유 속에 번영하는 통일독일의 16개 연방주를 의미하고, 의자마다 주 이름이 새겨져 있다. 1953년 6월 17일 동독에서 공산화에 반대하는 대규모 항쟁이 일어났고, 그 50주년인 2003년 6월 17일 제막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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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 정의, 자유의 원탁 / 사진=손기웅

평화의 바람개비

다른 하나는 '평화의 바람개비(Spirale des Friedens)'다. 40년 동안 이곳에서 동서독이 대립했고, 미국과 소련의 군사동맹체가 부딪혔다. 변화의 바람이 몰아쳐 국민들이 소망한 대로, 평화적으로 다시 함께하게 되었다. 평화를 뜻하는 'Peace', 'Frieden', 'Мир'가 각각 새겨진 세 날개의 바람개비는 변화의 동력, 평화로운 세계에서 비전과 유토피아를 위한 역동적 에너지를 상징하며 쉼 없이 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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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의 바람이 번져나가고 있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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