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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45] "마지막 접경역 구텐퓌르스트" (매일경제 프리미엄, 2022.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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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312회 작성일 22-05-16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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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45] "마지막 접경역 구텐퓌르스트" (매일경제 프리미엄, 2022.05.09)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5/31894/

1393㎞ 동서독 접경선 종주의 종착지로 달려가며, 마지막 접경역에 들어선다. 동독 작센과 서독 바이에른 경계의 동독 쪽에 위치한 구텐퓌르스트역(Bahnhof Gutenfürst)은 1848년에 건립된 유서 깊은 곳이다.

역이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지게 된 계기는 1945년 전쟁이 끝난 뒤 시작된 분단이었다. 미군과 소련군 간 경계역이었다 1949년부터 동서독 간 경계역이 되었다.

구텐퓌르스트는 1945년 4월, 5월 사이 미군이 먼저 점령하였다. 미·소 간 경계선 획정에 따라 7월 미군이 철수하고 소련군이 점령하면서 미군 점령지로 가는 소련군의 마지막 경계역이 되었다. 당시 열차는 비정기적으로 운행되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는 귀환자와 난민 등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석탄 운송이 주 업무였다. 1945년 12월부터 정기 운행이 시작되어 주로 중부독일(동독 쪽)에서 추출된 갈탄의 서독 쪽 수송에 이용되었다.

1947년 초반부터는 아주 제한된 인원이었지만 접경 통과 여행객도 우편물 이송과 함께 이용이 가능하였다. 미·소 간 정치적 상황에 따라 열차 운행은 단속(斷續)되었다. 1948년 6월부터 1949년 5월까지 촉발된 '베를린 봉쇄'(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6회, 7회: 베를린 하늘다리 상과 하 참조) 시기에는 당연히 중단되었다. 1952년 동독이 전 접경선에 걸쳐 통제를 강화하면서 다시 막혔던 철로는 1954년에 다시 열렸다.

1952년부터 동독 국경경찰이 소련군으로부터 역 통제를 넘겨받았다. 동독군이 주둔하면서 일대의 주민들은 후방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1961년부터 1990년 동독이 사라질 때까지 동독 국경수비대가 통제 임무를 담당하였다.

구텐퓌르스트역은 원래 라이프치히행이었다. 1964년 9월부터 서베를린행 화물 연결이 시작되면서 '접경통과검사소'로서 구텐퓌르스트역의 역할,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탈출 방지기지로서의 역할이 커졌다. 탈출이 증가하자 1975년부터 역은 요새화 수준으로 구축되었다. 모든 선로 위에 탈출을 감시하기 위한 '감시육교'가, 역사 주변에는 8개의 서치라이트 탑이 높이 세워졌다. 열차가 만약 역에 정차하지 않고 서독 쪽으로 돌진할 경우, 탈선하도록 긴급 보호장치도 만들었다. 공사는 1982년까지 이어졌다.

여권 심사와 검사를 위한 비밀경찰 슈타지(Stasi)와 세관 건물이 들어섰고, 정거장 옆에는 동독군 병영도 자리 잡았다. 그래도 불안했던 동독은 인근 593m 고지에 군을 주둔시키고 역사 전체를 감시하도록 했다.

▲ 구텐퓌르스트 역 입구에 위치한 동독 국경수비대 감시초소


▲ 분단 시기(사진 위)와 2020년 3월의 구텐퓌르스트 역사(驛舍), 감시육교가 사라지고 폐허가 되었으나 둥근 시계탑과 출입을 금한다는 빨강노랑 표지판은 예전 그대로다. / 사진=Wikimedia Commons·손기웅


구텐퓌르스트 접경역이 다시 각광받은 것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면서였다. 동독인의 서독 방문이 밀어닥쳐 통제의 어두운 침묵이 아닌 기쁨의 열기로 넘쳤다. 1990년 7월 1일 동서독 간 '화폐·경제·사회통합협정'이 발효되면서 더 이상 역에서 어떠한 검사도 필요 없게 되었다. 지금은 대부분의 열차가 정차 없이, 탈선 없이 통과하는 구텐퓌르스트역은 근교행 열차의 간이 정거장이다.


▲ 굳게 잠긴 채 폐허로 버려진 역사, 철심이 박힌 떨어진 벽 조각(사진 아래)을 통일이 가져다 준 선물로 소중하게 담아왔다. / 사진=손기웅

▲ 역사 옆 병영은 통일 이후 직업훈련소로 쓰이다 물류창고가 되었다. / 사진=손기웅

▲ 역사를 아래로 가로지르는 계단과 터널, 삼엄한 감시와 검문으로 숨죽였던 호흡 속 두근거린 심장 박동이 전해온다. / 사진=강동완

▲ 간이 정거장이지만 말끔히 단장된 플랫폼(사진 위), 유럽연합(EU)의 투자 지원으로 전기화되었다는 안내판이 붙었다. 유럽통합과 독일통합은 분리될 수 없다, 유럽통합 속에 독일통합이 이루어졌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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