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화협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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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36] "철조망은 넘었으나... 쉬플러스그룬트" (매경프리미엄, 202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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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34회 작성일 22-03-30 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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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36] "철조망은 넘었으나... 쉬플러스그룬트" (매경프리미엄, 2022.03.07)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3/31600/

쉬플러스그룬트 접경박물관(Grenzmuseum Schifflersgrund)은 통일 1주년인 1991년 10월 3일 문을 열었다. 서독 헤센과 동독 튀링겐주 사이 접경선에 만들어진 최초의 박물관이다.

입구 너머 콘크리트 감시탑과 헬기가 눈에 확 들어온다. 동독과 서독이 각각 바르샤바조약기구(WTO)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라는 군사동맹체에 가담하여 대립했을 때 사용하였던 탱크와 장갑차 등 무기들이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그 앞으로 통일과 평화를 상징하는 조형물들이 마주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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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쉬플러스그룬트 접경박물관 입구와 야외 전시 무기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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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독 국장(國章)이 새겨진 국경지주목을 부러뜨리는 손, 아마도 동서독 주민의 두 손이 함께하는 분단 극복이리라.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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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라졌던 벽이 합쳐져 통일된 국가의 국기(서독 국기)를 받치는 하나의 벽이 되었고, 그 아래 동독(DDR)이 새겨진 국경표지석이 뽑혀져 있다. / 사진=손기웅

전류가 흘렀던 철조망 장벽을 지나니 콘크리트 벙커과 감시탑이 위압적으로 눈을 부라린다. 당시 동서가 사용했던 각종 접경표지판으로 장식된 여러 전시관에는 전쟁, 분단, 접경지역 통제와 관련한 서류, 사진, 지도, 실물과 모형이 가득하다. 동독의 일상을 소개하는 잡지와 접경지 주둔군에 하달된 각종 비밀문서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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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접경표지판으로 장식된 실내전시관 / 사진=손기웅

당시 '서독'은 '자유'와 동의어였다. 너무나 가까이 자유가 있었지만 너무나도 멀었다. 많은 사람이 그 길에서 죽어갔다. 동독이 하달했던 발포 명령서에는 "독일민주공화국을 탈출하는 자를 말살(vernichten)하는 것이 국경수비대의 의무"라 명시되었다. 동독은 이 서한의 존재를 결코 인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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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벽을 부수고 ‘자유’로 넘어오는 동독 국민차 ‘트라비’, 장벽붕괴 20주년(2009년) 기념물이다. / 사진=손기웅

◆자유가 저긴데

입구 좌측 능선 아래로 철조망 장벽과 순찰로 코론넨벡(Kolonnenweg)이 길게 뻗어 있다. DMZ 철책 근무 시 보고 겪었던 낯익음과 긴장감으로 분단선을 걸어보다 또다시 가슴 아픈 현장에 마주친다. 하인쯔-요셉 그로쎄의 죽음이다.

굴착기 기사로 이곳에서 일하던 35세의 그로쎄는 자유를 지척에서 볼 수 있었다. 자유를 자신의 것으로 하기 위해 기회를 노리던 그는 1982년 3월 29일 드디어 실행에 옮겼다.

두 명의 감시병이 잠시 소홀한 틈을 타 순찰로를 따라 움직이던 굴착기를 순간 접경 철조망 장벽으로 몰면서 굴착기 손을 길게 뻗었다. 굴착기 손이 장벽 너머 걸쳐지자 그로쎄는 굴착기 손을 타고 단숨에 철조망을 넘고 언덕 위 자유를 향해 능선을 오르기 시작했다.

행운은 거기까지였다. 눈치 챈 감시병의 총구에서 불이 뿜어지고 그로쎄는 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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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사진 아래 순찰로 앞으로 6m 너비의 발자국탐지대를 지나면 자동살인장치 SM-70이 설치된 3.2m 높이의 접경철조망장벽이다. 우측 굴착기를 타고 장벽 넘어 언덕을 오르던 그로쎄는 십자가 지점에서 총을 맞았다. 바로 위 도로 난간이 ‘자유’의 서독 헤센이자 NATO와 WTO 간 경계선이다. 아래는 현재 모습 / 사진=손기웅

당시의 굴착기는 분단 시기에는 공화국 탈출자의 말로를 보여주는 선전물이었고, 지금은 자유의 간절함과 소중함의 상징이다. 차내는 낡았지만,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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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출 현장 굴착기에 출동한 동독군 트럭과 사건 1주년에 서독 신문에 소개된 그로쎄, 굴착기 현재 모습 / 사진=손기웅

◆탈출만 아니면 협력도 있었다

1984년 4월 5일 서독 청소년 4명이 탄 승용차가 접경박물관 인근 도로를 달리다 동독 쪽 언덕 아래로 굴렀다. 동독의 협조로 서독의 구호반이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동독 지역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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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고 현장 및 구조 사진, 아래 지도 붉은 선이 승용차가 도로를 탈선해 동독 지역으로 들어간 상황으로 도로 위쪽이 동독이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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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이곳을 순찰하던 서독 접경수비대원과 헬기, 도로 좌측이 서독이고 우측에 동독 국경표식지주와 표지판, 장벽이 보인다. 사고 현장이기도 하다. 콘크리트감시탑 일대가 지금의 박물관이고, 헬기는 현재 감시탑 앞에 안식을 누리고 있다. / 사진=손기웅・강동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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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은 그뤼네스 반트 내 아힉스펠트-하이니히-베라계곡(Eichsfeld-Hainich-Werratal) 자연공원에 속하며, 경관보호지역이다. 안내판은 4㎞에서 13.5㎞까지 다양한 산책 코스를 소개한다. / 사진=손기웅・강동완

여기서도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박물관을 안내해준 스테판 잔더, 1987~1988년 바로 이곳에서 동독 국경수비대원으로 근무했다. 체험을 곁들인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마치고 한반도 통일을 기원하며 동독 국경표지판 하나를 선물로 주었다. 통일의 그날까지 간직할 소중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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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잔더 씨와 그의 군복무증, 동독 국경표지판에는 ‘국경지대 통제지역 출입 및 통행 금지’가 적혔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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