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평화협력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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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1] "개성 소고(小考)" (매경프리미엄, 2022.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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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19회 작성일 22-07-11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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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1] "개성 소고(小考)" (매경프리미엄, 2022.06.20)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6/32072/

장관이다. 수십 대의 60톤 트럭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북으로 향한다. 등에는 지원할 비료가 가득 실렸다. 선두 차에서 돌아보면 끝이 없다. 집결지 오두산전망대 주차광장에는 출발을 기다리는 트럭으로 장터처럼 법석였다. 개성으로 출퇴근하듯 3일을 오가며 DMZ 연결의 기쁨을 누렸다. 2005년 5월 말이다.

군사분계선을 넘자 차례로 인민군, 세관원 등의 검문이 시작된다. 운전석을 샅샅이 뒤진다. 그들의 시각에서 볼온문서(不穩文書) 색출이 중점이다. 내려가며 가져온 선물이 없다고 내일 올 때 담배를 좀 가져달란다.

개성공단을 조금 지난 봉동역에는 하역 일꾼들이 기다리고 있다. 트럭 1개당 1조 1개 분대의 인원, 수십 조다. 트럭이 도착하자마자 조장의 지시에 따라 벌떼처럼 하역이 시작된다. 트럭마다 배정된 북측 조장과 트럭 기사는 비료 수를 확인한다. 남측 대표단은 북측이 간이로 마련한 천막에서 차를 나눈다.


<사진> ▲ 개성 비료 지원 (2005.05.21)

현장감을 느낄 겸 하역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다 듣는다. "모두 ○○○포대인데 몇 개만 적게 온 것으로 부탁합니다"라는 한 북측 조장의 부탁에 한 트럭 기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요청받은 수를 확인란에 기입한다. 하역이 모두 끝나고 대표단 천막에서 북측 대표의 쭈뼛거리나 명확한 어조의 말을 듣는다, "모두 ○○○포대가 추가로 왔는데 다음부터는 여분을 트럭마다 조금씩 따로 싣지 말고 아예 별도의 트럭에 한꺼번에 싣고 와주면 고맙겠습니다." 트럭마다 파손이나 불량을 고려하여 조금씩 여분으로 더 실어 온 비료를 차지하려는 북한식 밑에서, 위에서의 노력들이다.

이튿날 검문이 끝난 후 담배를 건넨다. 잽싸게 품속에 넣으며 내뱉는다, "내일은 부피가 작은 에쎄로 부탁합니다." 못해줄 이유가 없다. 분단 기간 동독 주민이 가장 기다린 서독 친지의 선물이 향기로운 '진짜' 커피와 담배였다.

어느 가을 찾은 개성 성균관,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압도적이다. 좌우에 암수가 떡하니 버틴 나무의 수령이 천 년이란다. 김일성이 직접 보고 말했다는 비석이 있으니 잘하면 전 조선의 역사를 굽어보았을 수도 있다. 기념품 가게에서 성균관 전경을 판박이처럼 보여주는 판화 그림을 찾았다. 그림과 실제를 번갈아보며 뛰어난 손 솜씨에 한민족임을 느낀다.


<사진>▲ 최영순 작 ‘성균관의 가을’ / 사진=손기웅

선죽교를 찾았다. 정몽주의 애달픈 사연을 떠올리기보다 정말로 그의 혈흔이 아직도 있는지를 먼저 살핀다. 바닥에 빛바랜 분홍색이 희미하게 느껴지는 돌을 발견했다. "아무리 그렇지만 600년이 더 지났는데 어떻게 저렇게 색이 남아있지요, 이상하지 않나요"란 질문에 북 안내원이 싱긋 웃으며 답한다, "가끔씩 뺑기칠합니다." 박장대소(拍掌大笑)가 터진다.

2007년 7월 말, 개성공단은 활기찼다. 초기 황량했던 벌판에 최신의 공장들이 자태를 뽐내며 섰다. 사업장마다 하얀 두건을 쓴 북 노동자들이 익숙하게 손을 움직인다. 공단 발전 계획을 보여주는 축소 모형도에는 희망과 설렘의 불빛이 반짝인다. 막 공사가 끝난 폐수종말처리장에서 폐수의 유입과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전광판에 실시간으로 나타나고, 공단 확대에 따른 용수 확보용 저수지 건설도 준비 중이다. 김일성·김정일 배지를 달지 않은 북 조장은 부지런히 일터와 남측 사무소를 오간다. 동료다.


<사진> ▲ 2007년 7월 31일 개성공단 현장과 발전계획모형도 / 사진=손기웅

방문할 때마다 북 노동자의 머리와 얼굴색을 본다. 습관이다. 독일 유학 시절 큰 병원에서 일하였다. 자리가 약간 높아 아래로 일하는 사람들의 머리를 볼 수 있다. 베를린장벽이 무너지고 통일이 되면서 아프리카나 중동 대신 동독인들이 대거 자리를 차지하였다. 머리만 보아도 누가 서독 출신이고 누가 동독 출신인지 100% 식별할 수 있었다.

때깔 때문이다. 서독인의 머리칼은 색이 밝고 부드러운 반면에 동독인은 빛바랜 색에 거칠다. 식생활과 삶의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느꼈다. 동서독 주민의 머리카락과 얼굴 때깔은 시간이 가며 하나로 되었다. 아직은 우리와 차이가 있는 개성공단의 북 노동자의 머리와 얼굴을 보며 안타까움과 함께 혹시나 변화가 있나 유심히 살폈다.


◆통일 지향 교류협력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은 남북 협력사에 획기적 선을 그은 대사변(大事變)이었다. 남북관계를 새롭게 획정할 수 있는 계기였다. 누구도 가능하리라 예측하지 못했던 만큼 성사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 좀 더 나가기를 원했고, 주장했다.

어차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을 위해서는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와 도로가 연결되어야 한다. 개성이나 금강산이란 북쪽 접경지역에서만 이루어지는 남북협력은 상호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닫힐 수 있다. 북한이 일방적으로 언제든지 닫을 수 있다.

규모가 작더라도 파주에 그리고 설악산에도 공단과 관광지를 조성하고 연계하여 남북의 인력과 물자가 철도·도로를 통해 남북으로 오르내리는 협력이 이루어져야 한다. 출발부터 북한 땅에서만 실시하면 변경하기 힘들다. 초기부터 의지를 가지고 협상을 밀어붙여야 한다.

그렇게 되었으면 한반도의 긴장 완화, 평화 안정은 더 탄력받았을 수 있다, 그렇게 했으면 공단과 관광이 문을 닫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동독이 어떻게 무너졌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남쪽 문을 걸어 잠근 것이 아니라 열 수밖에 없었던 김정일을 더 끌어내어야 했었다.

북한 땅에서만 이루어지는 남북협력은 '분단 관리 협력'이다. DMZ를 사이에 두고 남북 양쪽 접경지역에서 이루어지는 협력, 인력과 물자가 쌍방으로 오르내리는 협력이 '통일 지향 협력'이다. DMZ를 사이에 두는 '호리병형 협력'이다. 국제사회가 여기에 가담하면 금상첨화다.

만약 공단과 관광이 재개된다고 해도 북한 땅에서만 활성화되는 협력 사업을 찬성할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협이 재개된다는 의미는 김정은이 그만큼 다급하다는 반증이고, 따라서 통일 지향 협력을 반드시 이끌어야 한다. 한반도에 실질적인 평화가 도래할 수 있도록 반드시 그렇게 해야 한다. 북한 주민에게 상시적으로 항구적으로 다가갈 통로를 개척해야 한다.

그런 공단과 관광이 '북주남종(北主南從)형 모델'이라면, 다음에는 '남주북종(南主北從)형 모델'을 창출해야 한다. 남쪽 접경지역이 중심이 되고 북쪽이 연계되는 경협이다.

과연 그게 가능하겠느냐고 묻기 전에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이전에 과연 누가 그것이 가능하리라 생각했었는가를 되돌아보자. 의지가 있는 곳에 길이 열린다. 'Made in Korea'가 그것을 뒷받침한다.

2012년 말 이듬해 출범할 신 정부를 대상으로 「통일 지향 남북협력 4대 사업」을 국가전략으로 제안했다. 경기도 파주에는 6·25전쟁 참전 모든 국가가 참여하는 '세계평화공원', 강원도 철원에는 남쪽 철원이 중심이 되는 '신남북산업단지', 화천의 북한강 상류에는 '세계평화호수공원'과 'UNESCO 접경생물권보전지역', 고성에는 '유엔환경기구'와 '유엔평화대학교'를 구상했다. 모두 DMZ 평화적 이용을 통한 한반도 평화안정, 국가성장, 통일준비·촉진이 목적이다.


<사진> ▲ 파주 ‘세계평화공원’ 개념도

<사진> ▲ 철원 ‘신남북산업단지’ 개념도

<사진> ▲ 화천 북한강상류 ‘세계평화호수공원’ 및 ‘UNESCO 접경생물권보전지역’ 개념도

<사진> ▲ 고성 ‘유엔환경기구’ 및 ‘유엔평화대학교’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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