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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9] "백두산 소고(小考)" (매일경제프리미엄, 2022.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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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496회 작성일 22-08-27 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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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9] "백두산 소고(小考)" (매일경제프리미엄, 2022.08.15)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8/32311/

백두산 흰머리가 점점 다가오고 있다.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시작, 푸르게 펼쳐진 산과 호수, 나무와 맑은 공기 속에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딱 그 장면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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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화가가 그린 백두산 / 사진=손기웅

중국 쪽에서 오르는 백두산, 북파·서파·남파의 황량함과는 맛과 멋의 차이가 크다. 돌산이 아니라 초원과 숲을 오르고 있다. 채 한 달 전에 북파 코스로 올라 북한 땅을 바라보며 언제 저기에 설 수 있을까 한 꿈이 현실이 되고 있다.

일행 한 명이 버스기사에게 급히 하차를 요청한다. 생리 현상으로 모두가 생각한 순간, 내리자마자 무릎 꿇고 기도한다, "하나님, 순간 순간이 행복입니다." 모두 따라 내려 예정에 없던 휴식을 가지며 눈앞으로 성큼 다가온 백두정상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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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정상 길목, 최고봉인 병사봉(兵使峰), 북한 주장 장군봉이 보인다 / 사진=손기웅
정상에 오르기 위해 백두역에서 지상궤도식 삭도를 타고 향도역에서 내리지만, 정비 중이란다. 작은 버스로 가는 데까지 오르다 걷는다. 올라갈수록 발걸음에 힘이 실린다.

정상이다. 아래로 백두줄기가 훤하게, 시원하게 펼쳐진다. 맑은 하늘, 푸른 천지를 야트막한 구름이 호위하고 섰다. 북파에서도 서파에서도 남파에서도 가질 수, 느낄 수 없었던 감격이 가슴에 써늘하고 통쾌하게 뚫고 들어온다.

민족의 기상이다. 반도를 넘어 대륙이 우리 민족의 터전이다. 민족혼을 일깨운다, 우리가 서야 할 자리다. 백두산 호랑이 포효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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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두산 비로봉 앞에서, 건너편이 중국쪽 북파이고 그 너머로 장백폭포가 흐른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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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께한 여성동무들, 우리와 다를 바 없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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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쪽 북파에서 바라본 백두산, 가운데가 병사봉이고, 그 왼쪽 아래 천지로 내려가는 계단과 향도역에서 출발하는 공중삭도가 보인다. / 사진=손기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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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화가가 그린 백두산 호랑이 / 사진=손기웅

향도역을 들렀다. 깜깜한 어둠 속에 도대체 무엇을 분간할 수 없다. 한참을 쳐다보니 빛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 밝기의 백열등 아래 인민군이 이쪽을 노려보고 있다. 가볍게 손을 흔들고 자리를 뜬다. 저런 전력 사정에 삭도가 정비가 아니라 움직일 수 없겠다. 역 뒤쪽으로 거대하게 새겨진 "혁명의 성산 백두산" 글발이 무색하다.

아쉬움을 가득 안은 채 삼지연으로 내려왔다. 물이 항상 차 있는 3개 호수가 나란히 있다 하여 삼지연(三池淵), 일대 경관이 기가 막히다. 스위스·오스트리아·독일의 알프스보다 나으면 나았고, 공기는 청아함 자체다. 일대의 항일투쟁 선전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 동무, 함께 사진을 찍자니 자연스레 소매를 잡는다. 한 동포, 한민족이고, 우리나라 금수강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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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동무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한다 / 사진=손기웅

수년 전 백두산을 중국 북파 코스로 찾았을 때, 코로나19 발생 전이고 추석 연휴이긴 했으나 정상은 그야말로 사람 바다였다. 북파 최고봉은 물론 그 근처에조차 갈 수 없었다. 비행기로, 버스로, 또 지프차로 곡예를 하며 오른 정상에서 천지를 훤하게 굽어볼 수 없는 한심하고 억울한 상황이었다.

북한 쪽은 고요 그 자체였다. 백두산 천지의 54.5%를, 2500m 이상 봉우리 16개 중 9개를 차지하는 북한은 적막강산이고, 백두산 관광 특수는 모조리 중국이 누리고 있다. 2003년 당시에도 곳곳에 빨간색 리조트가 자태를 뽐내었고, 김정은이 심혈을 기울여 관광특구로 개발한 삼지연은 사진과 영상으로 보면 어느 유럽의 특급 휴양지 이상이다. 군에서 시로 승격도 됐다.

그런데 지금은 파리가 날리고 있다. 자신의 변화 없이는, 대북 제재 완화와 관광 재개의 꿈은 나무에 올라가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김정은 그만 모른다. 금강산관광지에 남쪽이 만든 여러 시설물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지고 너절하다며 싹 들어내란 김정은의 지시로 철거되고 있다. 곧 너절하게 변한 건물의 몰골들이 백두산은 물론이고, 원산 일대에 대거 출몰할 것도 김정은 그만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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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특구 삼지연시 /사진=연합뉴스
김일성 유격 활동 근거지였다는 백두밀영으로 가는 길에 약수터를 들린다. 한잔을 마시면 십년이 젊어진다는가, 세상에 물 한잔에 숙취가 가신다. 몇 잔을 들이키다 일행을 놓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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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한 화가가 그린 백두산 대작 앞에서 / 사진=손기웅

가만 생각해보니 북한 쪽에서 백두산 정상을 다시 밟은 적이 있다. 2009년 중국 쪽 백두산 서파 코스로 정상에 올라 북한과 중국의 경계 표지판 사진을 찍을 때 잠시 월북하여 북한 쪽에서 중국 쪽을 바라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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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서파코스 백두산 정상, 북한 국경비 앞바닥의 붉은 선이 북·중 국경선이다. / 사진=손기웅
지금은 DMZ가 남북의 접경선이지만, 언젠가는 북·중 국경선이 통일한국의 접경선이 될 것이다. 그날을 대비해 북·중 접경선에 지금부터 가능한 역할과 활동을 찾고 실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중 하나가 백두산 화산을 연구하는 남·북·중 협력이다.

동서독 접경선과 북·중 접경선 둘 다 약 1400㎞다. 통일 전후에 DMZ를 어떻게 보전하고 이용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것과 동시에, 북·중 접경선에 대해서도 거점별로, 형태 및 유형별 특색을 고려한 보전과 이용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

중국의 동북 3성은 역사적으로 문화적으로 우리와 밀접하다. 만주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 한 지정학자 해퍼드 매킨더의 말을 떠올리며 백두산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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