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8] "백두밀림 소고(小考)" (매경프리미엄,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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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2,501회 작성일 22-08-12 15:48본문
[베를린에서 백두산으로 - 58] "백두밀림 소고(小考)" (매경프리미엄, 2022.08.08)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8/32266/
2003년 7월 29일 오전 백두산행 고려항공, 프로펠러 비행기는 난기류 때문인지 급강하와 급상승, 끝도 없이 오르내렸다. 살아서 북한 쪽에서 방문하는 백두산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 와중에도 북한 산야에 눈을 떼지 않았다.
도시나 마을 주변 산들은 화전과 땔감용 벌목으로 붉은 민둥머리였다. 다만 내륙, 백두산 줄기와 개마고원은 울창한 밀림이다. 빽빽하게 날 보아달라는 듯 위로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을 보며 치열하게 진행 중일 이라크 전쟁을 떠올렸다. 3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4개월째다. 1990~1991년의 걸프전쟁에서 타오른 화염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 북한 화가가 그린 백두밀림 / 사진=손기웅
전쟁으로 인한 가장 비극적인 피해는 인명의 살상이다. 각 개인이 태어나서부터 가졌던 각양각색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망가지고 끝나고, 한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엉망으로 파괴된다. 군인들은 물론이지만, 전쟁과 하등 관계없는 민간인들은 더 큰 아픔을 겪어야 한다. 성별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고통은 세대를 넘어 가족사에 깊이 각인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완전 일방적으로 터지고 깨지고 박살 나는 생명체가 있다. 자연환경이다. 전혀 무방비고 저항할 수도 없다.
두 가지 진실이 있다. 하나는 인간이 발명한 과학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거나 적용을 검토하는 대상은 무기란 사실이다. 남들보다, 다른 사회나 국가보다 더 빨리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는 데 이용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만든 무기를 인간은 창고에 쌓아만 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실전에 사용했다.
자연환경은 인간이 최신의 과학기술로 뽐내듯 경쟁하며 만든 더 강력한 무기들의 실험 대상이다. 산천이 얼마나 더 넓고 더 깊고 더 길게 초토화되느냐에 따라 찬사가 쏟아지고, 금액이 책정되고 더 큰 시장이 열린다. 자연은 속절없이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두드리는 대로 얻어터지고 피 아닌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근대 국가가 상비군제(常備軍制)를 시행한 이래 군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군은 유지와 총체적 활동을 위해 자연환경을 광범위하게 이용한다. 주둔지뿐만 아니라 교육장, 훈련장, 그리고 주변에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토지는 물론이고 하늘, 바다와 해저도 대상이다. 우주도 포함되었다.
둘째, 군은 유지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 및 시설물의 생산을 위해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오늘날 해저에서부터 우주까지의 자연환경이 군사화되고 있다. 잠수함에서부터 군사위성에 이르기까지 자연환경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넷째, 분쟁과 갈등의 발생 시 군은 보다 직접적으로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승리만이 유일 최고의 목적인 전쟁에서 수단과 방법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전쟁 시기는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연환경에는 오랜 기간 상처가 남는다.
<사진>
▲ 걸프전쟁 때 이라크가 불질러 밤낮으로 불타는 쿠웨이트 유전 / 사진=AP
다섯째, 발달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자연환경의 힘을 이용하는 전쟁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댐을 폭파하여 강력한 물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전쟁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인공강우, 인위적인 해일과 지진의 발생 등이 이미 실행되었거나 계획되고 있다. 핵무기의 개발·실험에 따른 생태적 영향도 간과될 수 없지만, 화학 및 생물무기는 '약소국의 핵무기'로 개발되어 실전에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달로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적국에 떠 있는 구름에 영향을 미쳐 벼락이 치게 하거나, 떨어지는 벼락의 방향을 조정하여 적국에 떨어지게 하는 방안도 연구되었다.
여섯째, 역사적으로 환경자원은 사회 및 국가 간의 갈등과 전쟁의 주된 동인이 되어왔고, 폭력적 정책과 그것을 위한 준비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식민지 분할, 알사스-로렌 지방의 석탄·철강,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둘러싼 대립은 환경자원이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의 원인임을 실증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물 혹은 공기 등 기초적인 환경 요소가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물의 배분을 둘러싼 튀르키예,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이미 표면화된 사실이다. 식민지·석탄·철강·석유·물 등이 양(量)적 차원의 환경자원을 둘러싼 대립의 대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자연환경의 질(質)적 변화가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토양오염, 대기오염, 수질오염이 그것이다.
아래 도표는 세계 지역별로 증가하고 있는 물을 둘러싼 갈등 현황을 보여준다. 2000~2009년(하늘색)과 2010~2019년(푸른색) 기간에 물을 갈등에서 무기로 사용한 사례, 물이 갈등의 원인이 된 사례, 물이 폭력 사용의 목적이 된 사례를 살펴본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여, 비교 기간 111회에서 388회로 급증하였다. 아프리카의 경우 68회에서 150회로 증가하였다.
<사진>
▲ 세계 지역별 물을 둘러싼 갈등 빈도 비교 / 자료=Pacific Institute·Statista
자연환경의 이용과 계획에 군은 항상 특별위상과 우선권을 가진다. 군사력과 군사적 수단에 의한 국가안보정책이 절대시되고 '생태안보'는 후순위다. 자연환경의 손상, 파괴, 오염은 당연시된다.
평시(平時)건 전시(戰時)건 국가안보란 이유로 군이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국민의 생활 터전을 훼손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안보에 역행하는 일이다.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에조차 자연환경을 고려하는 전쟁의 수단과 방법에 합의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가늠할 수 없이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현재의 무기체계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평화를 얘기하려면 평화가 인간 간의 평화에 더하여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평화도 포괄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인간과 자연환경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자 함이다. 자연환경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환경을 필요로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번 깊이 베이고 할퀴어진 한반도, 그 안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복원해온 자연환경도 다시는 비극을 겪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서로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백두산 흰 머리가 다가온다. 인간이 사회적 환경과 관계하며 가지는 '세계관(Weltanschauung)'을 넘어서, 동반세계(Mitwelt)인 자연환경(natürliche Umwelt)도 포괄적으로 함께 동시에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환경세계관(Umweltanschauung)'이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박사논문 논지를 다시 확인하였다.
글을 쓰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인간들의 비명을 둘러싸고, 소리 없이 울고 있을 자연환경이 애처롭다.
https://www.mk.co.kr/premium/special-report/view/2022/08/32266/
2003년 7월 29일 오전 백두산행 고려항공, 프로펠러 비행기는 난기류 때문인지 급강하와 급상승, 끝도 없이 오르내렸다. 살아서 북한 쪽에서 방문하는 백두산 소망이 이루어지기를 하나님께 매달렸다. 그 와중에도 북한 산야에 눈을 떼지 않았다.
도시나 마을 주변 산들은 화전과 땔감용 벌목으로 붉은 민둥머리였다. 다만 내륙, 백두산 줄기와 개마고원은 울창한 밀림이다. 빽빽하게 날 보아달라는 듯 위로 위로 쭉쭉 뻗은 나무들을 보며 치열하게 진행 중일 이라크 전쟁을 떠올렸다. 3월에 시작했으니 벌써 4개월째다. 1990~1991년의 걸프전쟁에서 타오른 화염도 마찬가지였다.
<사진>
▲ 북한 화가가 그린 백두밀림 / 사진=손기웅
전쟁으로 인한 가장 비극적인 피해는 인명의 살상이다. 각 개인이 태어나서부터 가졌던 각양각색의 인생이 하루아침에 망가지고 끝나고, 한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엉망으로 파괴된다. 군인들은 물론이지만, 전쟁과 하등 관계없는 민간인들은 더 큰 아픔을 겪어야 한다. 성별이나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고통은 세대를 넘어 가족사에 깊이 각인된다.
이것이 다가 아니다. 영문도 모르고, 완전 일방적으로 터지고 깨지고 박살 나는 생명체가 있다. 자연환경이다. 전혀 무방비고 저항할 수도 없다.
두 가지 진실이 있다. 하나는 인간이 발명한 과학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거나 적용을 검토하는 대상은 무기란 사실이다. 남들보다, 다른 사회나 국가보다 더 빨리 더 효과적이고 강력한 무기를 개발하는 데 이용하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렇게 만든 무기를 인간은 창고에 쌓아만 두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한 번 이상은 꼭 실전에 사용했다.
자연환경은 인간이 최신의 과학기술로 뽐내듯 경쟁하며 만든 더 강력한 무기들의 실험 대상이다. 산천이 얼마나 더 넓고 더 깊고 더 길게 초토화되느냐에 따라 찬사가 쏟아지고, 금액이 책정되고 더 큰 시장이 열린다. 자연은 속절없이 비명을 지르지도 못한 채 두드리는 대로 얻어터지고 피 아닌 피를 흘릴 수밖에 없다.
근대 국가가 상비군제(常備軍制)를 시행한 이래 군은 자연환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선 군은 유지와 총체적 활동을 위해 자연환경을 광범위하게 이용한다. 주둔지뿐만 아니라 교육장, 훈련장, 그리고 주변에 보호구역을 설정하여 토지는 물론이고 하늘, 바다와 해저도 대상이다. 우주도 포함되었다.
둘째, 군은 유지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 및 시설물의 생산을 위해 막대한 자원과 에너지를 소모한다. 자연환경의 파괴와 오염에 일조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오늘날 해저에서부터 우주까지의 자연환경이 군사화되고 있다. 잠수함에서부터 군사위성에 이르기까지 자연환경은 군사적 목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넷째, 분쟁과 갈등의 발생 시 군은 보다 직접적으로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승리만이 유일 최고의 목적인 전쟁에서 수단과 방법이 자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려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 결과 전쟁 시기는 물론이고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연환경에는 오랜 기간 상처가 남는다.
<사진>
▲ 걸프전쟁 때 이라크가 불질러 밤낮으로 불타는 쿠웨이트 유전 / 사진=AP
다섯째, 발달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자연환경의 힘을 이용하는 전쟁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댐을 폭파하여 강력한 물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적에게 타격을 입히는 전쟁은 오랜 역사를 가진다. 인공강우, 인위적인 해일과 지진의 발생 등이 이미 실행되었거나 계획되고 있다. 핵무기의 개발·실험에 따른 생태적 영향도 간과될 수 없지만, 화학 및 생물무기는 '약소국의 핵무기'로 개발되어 실전에 사용되고 있다. 오늘날 유전공학의 발달로 그 위험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적국에 떠 있는 구름에 영향을 미쳐 벼락이 치게 하거나, 떨어지는 벼락의 방향을 조정하여 적국에 떨어지게 하는 방안도 연구되었다.
여섯째, 역사적으로 환경자원은 사회 및 국가 간의 갈등과 전쟁의 주된 동인이 되어왔고, 폭력적 정책과 그것을 위한 준비의 주된 원인이 되었다. 식민지 분할, 알사스-로렌 지방의 석탄·철강,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을 둘러싼 대립은 환경자원이 국가 간 갈등과 분쟁의 원인임을 실증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물 혹은 공기 등 기초적인 환경 요소가 새로운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물의 배분을 둘러싼 튀르키예,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간의 갈등은 이미 표면화된 사실이다. 식민지·석탄·철강·석유·물 등이 양(量)적 차원의 환경자원을 둘러싼 대립의 대상이었다면, 오늘날에는 자연환경의 질(質)적 변화가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되고 있다. 토양오염, 대기오염, 수질오염이 그것이다.
아래 도표는 세계 지역별로 증가하고 있는 물을 둘러싼 갈등 현황을 보여준다. 2000~2009년(하늘색)과 2010~2019년(푸른색) 기간에 물을 갈등에서 무기로 사용한 사례, 물이 갈등의 원인이 된 사례, 물이 폭력 사용의 목적이 된 사례를 살펴본 것이다. 아시아에서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여, 비교 기간 111회에서 388회로 급증하였다. 아프리카의 경우 68회에서 150회로 증가하였다.
<사진>
▲ 세계 지역별 물을 둘러싼 갈등 빈도 비교 / 자료=Pacific Institute·Statista
자연환경의 이용과 계획에 군은 항상 특별위상과 우선권을 가진다. 군사력과 군사적 수단에 의한 국가안보정책이 절대시되고 '생태안보'는 후순위다. 자연환경의 손상, 파괴, 오염은 당연시된다.
평시(平時)건 전시(戰時)건 국가안보란 이유로 군이 자연환경을 파괴하여 국민의 생활 터전을 훼손하는 것은 바로 국민의 복리증진을 목적으로 하는 국가안보에 역행하는 일이다. 평시는 물론이고 전시에조차 자연환경을 고려하는 전쟁의 수단과 방법에 합의와 실천이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가늠할 수 없이 가공할 파괴력을 가진 현재의 무기체계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평화를 얘기하려면 평화가 인간 간의 평화에 더하여 인간과 자연환경 간의 평화도 포괄하는 것임을 인식해야 한다.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인간과 자연환경의 모든 생명을 지키고자 함이다. 자연환경이 인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생존을 위해 자연환경을 필요로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한 번 깊이 베이고 할퀴어진 한반도, 그 안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스스로의 생명력으로 복원해온 자연환경도 다시는 비극을 겪지 말아야 한다. 인간이 서로는 물론이고 자신의 삶의 터전을 황폐화시키지 말아야 한다.
백두산 흰 머리가 다가온다. 인간이 사회적 환경과 관계하며 가지는 '세계관(Weltanschauung)'을 넘어서, 동반세계(Mitwelt)인 자연환경(natürliche Umwelt)도 포괄적으로 함께 동시에 생각하고 행동하려는 '환경세계관(Umweltanschauung)'이 삶의 기초가 되어야 한다는 박사논문 논지를 다시 확인하였다.
글을 쓰는 지금 우크라이나에서 들려오는 인간들의 비명을 둘러싸고, 소리 없이 울고 있을 자연환경이 애처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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