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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토크] "김정은의 영상 정치, 인형 정치" (뉴스퀘스트, 2025.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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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8회 작성일 25-06-16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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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웅의 통일토크] "김정은의 영상 정치, 인형 정치" (뉴스퀘스트, 2025.06.16)

https://www.newsquest.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6605

<사진 1> 조선중앙TV는 6월 12일 나진조선소에서 거행된 강건함 진수식에서 행한 김정은의 연설 전부를 음성 없이 영상과 자막으로 방송했다. 김정은 뒤에 김주애가 보인다.[사진=조선중앙TV캡쳐]

<사진 2> 4월 25일 남포조선소에서 거행된 최현함 진수식에서 함정 사열을 위해 김정은·김주애가 함정에 어렵게 내리고 있다.[사진=조선중앙TV캡쳐]

<사진 3> 6월 12일 나진조선소에서 거행된 강건함 진수식에서 함정 사열을 위해 김정은·김주애가 설치된 계단으로 함정에 쉽게 내리고 있다.[사진=조선중앙TV캡쳐]


북한의 영상물, 특히 조선중앙TV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김정은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알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모든 것이 검열되는 상황에서, 경제난으로 극히 제한된 매체 가운데, 그래도 가장 빨리 북한에서 일어난 일을 풍부한 화면과 함께 매일 매일 전달하고 보여주는 게 조선중앙TV이다. 중요 뉴스의 경우 일간지 조선중앙통신이나 노동신문에 실린 기사를 자구하나 틀리지 않고 아나운서가 읽는다.

접근이 매우 어려운 북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자연 전 세계가 조선중앙TV에 눈을 집중할 수밖에 없다. 6월 12일 나진조선소에서 거행된, 5월 21일 김정은 눈앞에서 진수에 실패해 격노케 했던 5,000톤급 신형 다목적공격형 구축함 2번호(1번호는 4월 25일 진수한 ‘최현’함) ‘강건’함 진수식 영상을 들여다보았다, 몇 가지가 눈에 밟힌다.

갓 40을 넘긴 김정은, 14년을 집권하며 권력 운용의 방법에 있어 많이 노련해졌으나, 나이를 속일 수 없는 치기(稚氣)도 느낄 수 있다.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다.

▲장면 1: 김정은이 전용 열차로 도착한 부두에는 푸틴이 선물한 리무진 ‘아우루스’ 2대가 준비되어 있었다. 물론 번호판에는 승리를 상징하는 ‘전승절’의 ‘7.27.1953’이 붙어있다. ‘정전협정’ 서명 날을 전쟁 승리를 확정한 날로 주장·기념하는 북한이다.

국가 원수가 자동차로 움직일 때, 불상사 방지 차원에서 어느 차를 이용하는지 혼돈을 주기 위해 동일한 차량을 복수로 운행하는 것은 통상적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그렇게 이해하기 어렵다.

영상으로 열차에서 진수식 행사장까지 정확한 거리를 측정할 수는 없으나, 직진 후 우회전, 곧 좌회전하면 도착하는 총거리가 불과 200~300미터다. 부두에 접안된 구축함 앞으로 참석자들이 도열했고, 그 위에 주석단이 만들어져 김정은을 포함한 귀빈들이 앉았다. 행사장은 통제된 제한된 공간이고, 참석자들도 엄격히 선발되었다고 설명되었다.

불상사를 우려해 2대의 아우루스를 운행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럼 왜 그랬을까.

세계 최고라 평가받는 고가의 번쩍번쩍 빛나는 2대의 방탄 리무진으로 김정은의 권위를 보여주고자 했다. 그런 차량을 두 대나 선물한, 자신의 든든한 뒷배가 된, 푸틴에 대한 김정은의 감사 표시, 보은이라 할 수 있다. 북한 주민에게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 중국에, 김정은 자신과 푸틴의 끈끈한 혈맹의 관계를 선전하고자 한다.

▲장면 2: 지난 최현함 진수식에 이어 이번에도 김주애가 등장했다. 주석단에는 김정은과 김주애, 그리고 당·군·정 수뇌들과 함정 건조·진수 관련 인사들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김정은 외에 누구도 의자에 허리를 붙인 이가 없다. 김주애를 포함해 모두가 의자 앞부분에 허리를 바짝 세우고 당겨 앉아, 긴장하고 조심스레 집중하고 경청한다는 자세를 연출했다.

편히 허리를 의자에 대는 행위는 바로 자신을 위대한 지도자 김정은과 동열에 놓는 것으로 불경이자 처벌 대상이다.

‘이민위천’, ‘인민대중제일주의’를 입에 달고 사는 김정은이지만, 그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 같을 수가 없다. 행사를 즐기는 이는 김정은 혼자여야 한다. 참석자 모두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김정은을 즐겁게 하는 엑스트라, 부속물, 무대장치여야 한다.

행사 내내 행사장을 오가며 방송카메라는 수많은 참석자의 얼굴과 모습을 개별적, 집단적으로 보여주었다. 주석단을 비추는 어느 한 장면에서 한 사람이 허리를 의자에 대고 있는 모습이 잡히자마자 확 편집되어 사라졌다.

행사 후 그 사람이 어떻게 되었을까 자못 궁금하다.

▲장면 3: 행사 내내 참석자들은 감격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김정은·김주애의 등장과 퇴장, 김정은의 연설, 김정은·김주애의 함정 사열 동안 목이 터져라 외치는 함성은 기본이다. 태반이 눈물을 글썽이거나 눈물을 흘렸고, 조선중앙TV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이를 잡아 보여주었다.

김정은이 등장하는 행사에 참석하는 북한 주민 대부분이 보이는 틀에 박힌 장면이다. 정말 이들은 저토록 김정은을 흠모하고 존경하고 ‘총폭탄정신’, ‘수령결사옹위정신’으로 온 몸을 던져 지키려는 마음일까.

필자는 그 해답이 카메라에 있다고 본다. 김정은이 참여하는 행사에 참석한 북한 주민의 수가 얼마나 많건 간에, 방송카메라는 쉴 새 없이 오가며 북한 주민의 표정을, 동작을 촬영한다. 아니 감시한다.

만약 누군가가 멍하니 있거나, 격정적인 감동의 표정과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과연 그 사람은 어떻게 될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졸다가 불경·불충죄로 공개 처형됐다고 한다. 김정은의 고모부 장성택이 처형된 이유 중의 하나가 ‘건성박수’였다고 한다. 짝다리 짚었다고 숙청되는 북한이다.

이런 현실에서, 여러 대의 카메라가 언제 어디서 자신을 찍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대~충하겠는가. 죽을힘을 다해 소리 지르고, 빠르고 격렬하게 ‘물개박수’를 치며, 사랑과 감동과 존경의 눈물을 짜내야 한다.

▲장면 4: 조선중앙TV는 이번 진수식에서 김정은을 다소 이례적인 방법으로 보여주었다. 최현함 진수식에서는 김정은의 긴 연설을 육성 그대로 전 장면을 방송한 반면, 이번 강건함 진수식에서는 김정은의 연설 장면을 음성 없이, 화면 왼쪽 반쪽은 김정은이 말하는 영상을 그리고 오른쪽 반쪽에는 연설 내용을 문장으로 올려 전체를 보여주었다.

김정은 육성이 보여줄 수 있는 그의 건강 상태 파악을 차단하고, 특유의 목소리·발음으로 인한 의미 전달의 어려움을 피하면서, 자막 글로 강조점과 주안점을 명확하게 주민에게 전달할 수 있는 이점을 노린 듯하다.

▲장면 5: 김주애는 이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다. 해군 행사이니만큼 흰색 투피스 정장 차림의 김주애는 구두를 신어 키가 아버지보다 높다. 얼굴도 제법 성숙한 모습이고 머리도 그렇게 단장했다.

잦은 등장에도 행동은 여전히 뻣뻣했다.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알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양 행동했다.

목석과 같은 장식용 꽃이었다, 인형이었다.

김정은이 함정 건조 과정에서 사망한 노동자의 어린아이를 단상으로 초대해 안아줄 때, 김주애도 손이라도 내밀어 도닥여주었다면 하는 생각을 북한 주민은 하지 않았을까.

김정은은 그야말로 다정한 부정(父情)을 보여주려는 듯 손을 꼭 잡고 걸었다, 계단을 오를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정한 대화는 물론이고, 둘이 함정 주변을 거니는 ‘투샷’도 일부러 연출했다.

리무진에 오를 때는 경호원이 해도 될 일을, 굳이 김정은이 운전석 뒤쪽 차 문을 직접 열어 주애를 먼저 타게 한 후 자신은 뒤를 돌아 자리에 앉았다. 이제는 정례화되었다.

신과 같은 자신이 내 딸을 이렇게 존귀하게 모시니 너희들은 알아서 기어라고 말하는 것이다. 김씨 가계 권위를 굳히고 권력 세습의 당위를 진작 학습시킨다. 전 세계에 대해서는 내가 무슨 폭악한 독재자냐며 시위하는 것이다.

▲사족 1: 김정은의 김일성 흉내 내기, 정장에 창 넓은 모자를 쓰고 뒷짐지기는 얼마나 연습했는지 제법 자연스럽다. 두 달 전 최현함 진수식에서보다 체중을 감량했는지 얼굴이 약간 줄고 몸이 가벼워 보였다. 걸음걸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 모습을 보면 당장 큰 병은 나지 않을 듯하다.

▲사족 2: 남포조선소에서 4월 25일 거행된 최현함 진수식에서 김정은은 함정에 대한 첫 사열을 위해 김주애와 함께 계단을 올랐다. 계단에서 함정으로 내릴 때, 그리고 끝나고 함정에서 계단으로 오를 때 문제가 있었다.

계단과 함정 간 높이 차이가 커서, 함정이 계단보다 낮아, 김정은은 물론이고 김주애가 어려움을 겪었다. 자칫 발을 접질릴 수 있었고, 그 장면이 조선중앙TV를 통해 생생하게 보여졌다.

필자는 지난 칼럼 “‘김정은式 함대 건설시대 닻’ 올린 ‘다목적공격형 구축함’ 진수식 단상”(2025.04.28)에서 “중간에 계단 두 개, 최소한 하나는 놓여야 했다. 누군가 엄청나게 터졌을 것이다”라 썼다.

이번 강건함 진수식에는 과연 계단이 마련되었다.

청진조선소에서 강건함이 진수에서 넘어지자 김정은은 길길이 날뛰었다.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 조사와 문책을 지시했다.

자신과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이 다칠 수 있었는데, 남포조선소의 누군가가 얼마나 터졌을까 더욱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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